지금으로부터 약 3년전, 리크는 플로레지방에서 열리는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운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캠프 사람들은 지역마다 하나씩 있는 어두운 사연과 거대한 조직에 엮여서 호되게 고초를 겪으며 얼떨결에 한 지방이 다시 한번 잿더미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하."
그 결과로 캠프 사람들 중 실력이 뛰어난 트레이너들은 플로레지방의 구성원이 되고, 높이 올라간 코디네이터들은 이름을 떨치면서 부와 진로를 약속받았으며, 그 외에도 이곳에 정착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좋은 일이었으나, 결과가 좋게 끝나 다행인 것이지 살면서 조직의 악의에 노출되고 습격 당하는 것이 몇이나 될까? 하필이면 그 지방에 머무는 악몽 포켓몬과 조직에서 대규모로 풀어버린 포켓몬에 의한 세뇌독을 맞아버린터라, 습격 당한 뒤 일주일 동안 앓아눕거나 악몽에 시달려 조종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했었다. 아마 도움이 없었으면 캠프 사람들 모두가 행동불능에 이르다가 뿔뿔히 흩어졌을 것이다.
요점은, 정신이 잠식 되었을 때의 그 소름끼치는 감각이 또 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ㅁㅁㅁ와 관련없는 먼 동쪽의 지방에서.
세상 모든 것에 공짜는 없고 저기 어딘가의 속담으로는 싼 게 비지떡? 하여튼 정말 맛없는 무언가. 라는 게 있다지만 이쪽도 어지간히 험한 잠자리란 잠자리는 다 겪어봐서 과감하게 최저가 순서로 여관 목록을 뽑았다. 위생? 온천이 더러우면 쓰지 않으면 될 일이고 이부자리가 개판이면 진작에 별점 테러를 맞고 죽었을테니 괜찮다. 난방? 어차피 여름인데 추운 것 보단 더운게 나았다. 게다가 위의 두 부류는 후기 및 위치, 외관에서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었으니 피할 수 있었다. 사실 알고보니 말 못할 사정이 있는 사고매물이라거나, 귀신이 나온다거나, 주인장이 수상하다거나...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귀신과 노숙을 비교하자면 노숙이 더 엿같고, 그거 두개만 빼고 멀쩡하고 싼 숙소라 생각하면 의외로 손해보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생각했었다.
"시발."
그리고 no pain no gain의 법칙은 여행경비를 좀 아껴보겠다는 여행객에게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악몽 뒤 기억상실'이라는 큰 엿으로.
플로레지방에서 당했던 일은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공간이 화마에 집어 삼켜지는 악몽을 매일밤 꾸면서 세뇌독에 조종당하는 일이었다. 요약하면 무슨 #세뇌#mc물 같은 태그가 붙는 소설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리크는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거창한 망상같은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간만에 잊고 있던 그리운 사람을 만났다. 살다보면 영영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은 있기 마련이다.
그녀는 어렸던 자신에게 삶을 좀 더 풍요롭게 이어나가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정을 주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었고, 인간을 미워하면서도 얼마남지 않은 꽃같은 마음을 닥닥 긁어 자신에게 아름다운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닥쳐온 파란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버리고 도망친 사람이었으며, 죽은 뒤에도 자신에게 확신을 주고 실낱같은 애정을 이어나가주길 바랐던 이였다.
그리고 이제는 만나지 못할 사람이었다.
리크 비리디언에게 사랑과 그리움, 후회가 뭐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그녀의 이름을 말하리라.
그랬기에 꿈에 자신만이 아닌 그녀가 다시 나온 것은 기뻤는데....이제는 떳떳하게 마주할 수 있는 얼굴이 텅 비어있었다.
꽃밭에서 잡초를 뽑던 어린 소녀에게 물을 건네던 얼굴도, 억지로 티타임에 앉혀놓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 모습도,
마치 가위로 잘린 그림책마냥 뻥 뚫려있었다.
"....이게 업본가?"
일어나서 몰려오는 좌절감에 저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본래는 업보고 나발이고 업보를 준다면 나도 되돌려 주겠다는 퐈이팅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러기엔 누구나 조금은 약해지는 부분이 있는 법이었다. 카멜리아, 유서에선 다 용서했다고 어쩌구 하면서 이런식으로 면박을 주는거에요? 허나, 원래 헛생각은 떠오르는 순간 곧바로 사라지는 법이었다. 리크 역시 잠깐 좌절감이 들었지만 곧 헛생각을 치웠다. 꿈이 무슨 그림책도 아니고, 그렇게 조각조각 잘리는게 정상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자신의 무의식에는 콜라쥬 같은 예술적 소양은 존재하지 않았다.
옆에서 곤히 잠든 엑스레그- 다우징- 의 목에 걸린 형광색 깃털이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은 이 깃털이 언제 빛나는 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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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뛰쳐나오자마자 멱살잡이를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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