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wja6R8rEJI?feature=shared

거미줄은 거미의 생존수단이자 정체성이다. 살면서 함정을 파서 사냥하는 녀석들이야 많지만, 함정하면 떠오르는 동물(곤충포함)을 말하라면 십중팔구는 거미를 떠올릴 것이다. 얼핏보면 연약하다 싶을정도로 가느다랗지만, 한번 걸리면 어지간한 수단으로 떨어지지 않는 끈적하고 가느다란 실. 걸리는 순간 움직이지 못하는 사냥감에게 천천히 다가와 목적을 달성하는 모습까지. 그런 의미에서 거미는 덫을 놓는 분야에서 더없이 훌륭한 사냥꾼이라 할 수 있었다.
한번에 집을 부술 수 있는 동물들도 거미줄을 온전히 떨쳐낼 수 없다. 그만큼 거미줄의 끈끈함은 자연을 통틀어 굉장히 우수한 물질이다. 그렇기에 그 뛰어난 사냥꾼이 자신의 덫에서 자유로운 비결에 대해 알아내려는 노력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는 거미가 줄의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실을 뽑아 끈끈하지 않은 곳으로 간다 했지만, 모든 이론이 그렇듯이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밝혀진 비결은 거미의 다리 자체에 끈끈함을 막아주는 기관이 있다- 는 점이었다.
각설하고, 그런 의미에서 리크는 비슷한 이유로 이 사건에 휘말린 외지인이자 오컬트나 무속, 주술과는 일절 관련없는데도 이 거미줄에서 가장 자유로웠다. 선천적으로 항마력이 있다거나 하는 어딘가의 판타지 같은 설정은 아니고, 그저 예전에 받은 부적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정확하겐 늘 데리고 다니는 파트너 포켓몬이 지니고 있었지만.
꿈이니 정신이니 하는 것은 아무리 겪어도 뭔가 와닿지 않는 허상같은 것이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는 알고 있어 반사적으로 포켓몬들이 잘 있는지 허리에 찬 볼들을 매만지며 점검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준비'를 한다는 생각으로 와서 그러한지 모두 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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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맞죠?]
- 남자의 손바닥 위에 하얀 동백꽃 한송이가 피어나듯 얹어져 있었다. 어디서 꽃 한 송이 꺾어와서 속이는 가능성을 염두에 뒀으나, 그것을 보는 순간 아주 당연하게 그녀의 기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꽤 깊은 곳에 있었어요. 거미줄은 거의 장악할뻔 했는데, '거미'의 저항이 심해서 이것만 급하게 들고 왔어요.
소중한 거잖아요?]
눈이 빛을 반사하여 어둠속에서 은은히 빛나듯이, 하얀 꽃잎 역시 그러했다. 이걸 영영 잃었다면 이따금 뚫려버린 구멍을 바라보며 내적으로 한숨을 쉬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귀를 핥듯이 속삭이는 목소리는 제법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 본 것 같아 섬뜩했지만 이미 멱살잡이를 한 판에 새삼스레 약점인 걸 숨길 의미도 없었다. 반사적으로 사납게 노려보자 남자는 빙그레 웃으면서 두 손을 살짝 들었다.
[맞아요.]
[ ......! ]
그래서 그녀는 무른 속내를 감추는 대신 드러내는 것을 택했다.
'카멜리아' 는 자신의 약점이 아니며, 그녀가 자신에게 주었던 이 감정이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으니.
조금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기억에 대한 예의였다.
물론 저 못믿을 사내가 기습이라도 당한것마냥 잠깐 굳은 건 의외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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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찾는 것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이 거미줄을 만든 매개체인 물건- 남자는 그것을 '독사슬'이라 불렀다- .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 그것도 중요하지만...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사람의 기억'이에요.
저번에 말했죠? 제 보호자가 있었다고. 꽤 오래전에 헤어졌는데,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영 기억이 나지 않거든요. ]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찾는 것도 기억속의 '사람'이었다. 그 역시 자신을 돌봐주었던 사람을 찾고 있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이 거미줄 속에서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후자가 중요하니 전자는 몰라도 꼭 기억을 찾아달라고 당부하던 걸 생각하니 자신이 간절하게 찾던 것이 생각나 기분이 묘해졌다. 아무리봐도 그리 간절할게 없어 보이는 이였는데,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간절한 것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드러낼 부류가 아닐텐데도.
마음 한구석에서 자신을 밀어넣으려는 함정이 아니냐. 는 의심이 들었지만 왜 그렇게 꺾여버렸나 혼잣말하던 남자가 보이던 균열은 적어도 거짓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계략과 연기를 파악하는 눈은 없어 이런 확신은 꽤 경솔했지만, 적어도 가면이 아닌 갑옷으로 겹겹이 스스로를 둘러싸고 동시에 간절함을 끊임없이 안으로 삼키던 것은 자신이 평생 해 온 일이었다.
이는 비슷하게 살아온 이가 느끼는 '공감'이었다.
화려한 꽃들이 허리 위까지 올 정도로 높게 자라있었다. 한걸음 옮길때마다 복잡하게 얽힌 꽃과 줄기들이 다리에 엉켜와서 마치 바닷물을 헤치고 걷듯이 붉은 겹꽃들을 헤치고 나아가야 했다. 이 망망한 붉은 물결 앞에 방향을 알 수 없었으나 그 사람이 자신을 닮았다고 했으니 감이 오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아."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서 낯선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키나 체격을 보아 대략 성인남성정도로 추정되는 이였다. 단정하게 묶은 검은 머리에, 어깨에 걸쳐진 성도식의 긴 겉옷이 바람따라 날개처럼 팔랑이고 있었다.
저사람이다.
저사람인가? 가 아니라 저사람이다. 그리 확신하자마자 리크는 바쁘게 팔다리를 움직여서 꽃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흡사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저 사람이 사라질까, 조금 다급한 마음으로 가까워진 등에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잡아 뒤로 돌렸다.
"이봐요."
그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남의 기억이라 그럴까, 분명 얼굴이 있는데도 어떻게 생겼는지 잘 인식이 되지 않았다. 어쩐지 그 마저도 기억속에 커다란 모자 아래 가려진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 조금 서글퍼졌다.
"당신을 찾는 사람이 있어요."
- .......
- 백아가 저를 찾고 있습니까?
그는 무어라 말하듯이 입을 움직인 것 같았지만 갑자기 거세진 바람소리에 잘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 또한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인식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안합니다. 말이 잘 들리지 않아요. 행여나 바람소리에 묻혀 자신의 행동이 무례하게 보일까 외치자, 그는 입가에 희미하게 웃음을 띄고 손을 내밀며 무어라 말했다. 입술이 움직이며 말을 자아냈다.
- 저를 백아에게 안내해주세요.
- 그러면 그 애는 편해질 수 있으니까.
돌아가는 길은 쉬웠다. 울타리마냥 길게 자란 꽃밭은 그 기억의 손을 잡은 순간 거짓말처럼 평범한 꽃들로 돌아갔다. 이렇게 탐스럽게 핀 꽃을 밟고 싶지 않아 길을 찾으려 했지만 그의 기억은 오솔길 하나를 만들 정도로 섬세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여전히 손을 잡힌 채 묵묵히 따라 걷고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해도 들을 수 없으니, 자연스레 그 사이에는 침묵과 사각거리며 풀을 밟는 소리만 채워지고 있었다. 이따금 고개를 돌려 잘 따라오나 확인했지만, 여전히 시야에 노이즈가 낀 것 마냥 제대로 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흐릿하게 드러나는 입술이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 그 사람도."
자신은 그리 관심을 가져줄만큼 예쁨받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에게 투덜거리면서도 늘 무언가를 줬다. 그렇다면 그의 소중한 사람은 그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당신이 돌봐주던 그 사람도 꽤 귀찮은 아이였을까요?"
"은근히 뻔뻔하고 머리 꽤 굴리던 타입인데, 어떤점이 좋았어요?"
이어지던 질문은 저 멀리 나풀거리는 검은 나비같은 옷자락을 보자, 멈출 수 있었다. 소리내어 그를 부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리크는 손잡은 이를 보며 말했다.
"그거 알고 있어요? 그 사람도 당신을 꽤 찾더라고요.
.....그렇게 찾는데 앞에 나와주지 그랬어요."
어쩌면 그 사람도 당신 하나만을 보면서 억지로 버텼을지도 모르는데. 머릿속으로 답지 않게 감상적이 되어 참견했다는 질책이 나왔지만, 알게 무엇인가. 어차피 기억이니 꿈이니 하는 허상을 상대로 이정도는 드러낼 수 있는 속내였다. 이 사람이 아끼는 '아이(였던)' 에게 이걸 다 말할 타입도 아닐테고.
- .....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그는 대답대신 무언가를 꺼내어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뭔가 싶어 엉겁결에 받아들려 손을 내밀자 조금 뒤로 물리며 비어있는 손으로 쥐고 있는 방향의 손등을 두드렸다. 눈을 깜빡이며 잠시 생각하다, 주머니에 넣어둔 장갑을 꺼내 착용한 뒤 다시 손을 내밀자 그제서야 '그것'을 떨어트려줬다.
"이게 뭐죠?"
- ......독사슬 입니다.
".....!"
그가 찾던 첫번째 물건이자 이 거미줄이 작동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들여다보니, 뭔가 어딘가의 오컬트처럼 사람 살점이나 흉흉해 보이는 물건이 아니라 그저 가운데가 뚫린 자주색의 고리- 그것도 삼분의 일이 떨어져 나간- 였다.
- 절대로 넘기지 마세요.
"네?"
그는 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그제서야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가 걸친 겉옷과 비슷한 모양의 검은 겉옷이 마치 검은제비꼬리나비처럼 팔랑이고 있었다. 답지 않게 눈을 크게 뜨고 황망하게 깨어진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찾는 이가 맞나보다.
"형님..."
"....."
".....드디어 오셨군요. 한참 찾았어요.."
남자는 그때 그 위태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끌어안았다. 이 감동적인 가족 상봉에 내가 끼어있어야 하나. 일단 너무 가까이 있으면 분위기를 깰 테니 조금 떨어져 모른 척 있으려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그의 등에 둘러진 남자의 소매 너머로 포착된 예기에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잡고 끌어당기려 했다. 순식간에 그의 겉옷에 붉은 자국이 개화하듯 번졌다. 경악하여 하얗게 변한 머릿속과 달리 몸은 재빨리 끌어당겨 남자에게서 그를 떼냈다.
남자는 제 품에서 떨어져 나가는 이를 무표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 같이 흔들리던 얼굴도, 그리움에 흐려진 시선도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싹 지운 채, 이쪽을 보고 그린듯이 빙그레 웃었다.
" ..그럼 빨리 죽어주세요.
'나'와 백아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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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서 남캐(..)가 둘이 나오는지라
'남자' > 유도화 / '그' > 형님으로 했습니다.
로그에 붙은 [시점변경] 은 관찰 및 서술하는 인물이 달라질때마다 붙였습니다.
참고로 글에서는 두사람의 시점이 번갈아 나왔습니다.
드래그를 해보시면 숨겨진 대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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