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원한이 씌어 만들어진 포켓몬이 하나있다.
흔히 고스트 포켓몬들이 그렇듯이 이 포켓몬이 정확히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딘가의 어둠대신이 쑥쑥 자란 개체일수도 있고, 전해지는 이야기처럼 버려진 것에 무언가가 씌여서 변해버린 개체일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다크펫에게는 꽤나 재밌고 사랑스러운 첫 친구가 있었다는 점이다. 전형적으로 제가 보기에 사랑스러운 것들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이 수시로 바뀌며 아는 놀이가 많았지만 다소 쉽게 질리는 친구였다. 사실 그정도 변덕이야 어린아이에게는 흔한 성질이었으니 그리 거슬리진 않았다. 적어도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장소와 놀이, 대화에서 자신은 친구와 늘 함께 있었고 그 모든 순간이 즐거웠으니 그것으로 좋았다.
다만 좋아하는 것도, 좋아해주는 것도 많던 친구에게 다크펫은 진득하게 오래 갈 상대는 아니었다.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이 보이면 익숙한 것과 옛 것은 자연스레 손에서 놓고 잊혀진다. 그리고 버려진다.
다크펫은 누구나 하나쯤 그때 그런게 있었지. 하고 기억속에서나 떠올릴 것이 되었다.
버려진 물건은 원한을 가지고 포켓몬으로 새로 태어난 것일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첫 친구와의 기억은 아주 소중하고 즐거웠고, 그것이 쓰레기장으로 처박히는 순간에 무언가가 금이 가버렸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걸 슬픔이라 하고, 누군가는 그걸 원한이라고 하겠지만... 유령은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보다는 순간순간 찾아오는 유쾌함과 진득히 눌어붙은 집념으로 움직이는 존재였다.
다크펫은 친구를 다시 한번 만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든 다시 만나서, 이렇게 늘 무언가가 줄줄 새어나오는 것을 보여주고 그 친구에게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금을 똑같이 그어줘야겠다 다짐하고 여행을 떠났다.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고, 꽤 오랫동안 헤맸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은 친구가 어떤 아이였는지 아주 잘 기억하고 있는데다, 그 친구를 어떻게 부술 지 생각하는 즐거움도 있어 여행이 나쁘지는 않았다.
희미한 흔적을 더듬고 또 더듬은 끝에 꽤나 낡아버린 상태가 되고 나서야 그 친구를 찾았지만 다시 만난 친구의 모습도 예전같지 않았다.기억속에 있는 '이름'이 새겨진 비석과 친구가 자신을 버린 이후에도 좋아하던 물건들이 널부러진 작은 무덤을 보았을때, 다크펫의 금이 가버린 무언가는 생각보다 잠잠했다. 어떻게든 친구에게 해코지를 하고 괴로워 하는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금 간 마음 사이로 둥실둥실 들뜨며 새어나오던 감정도, 악의도 거짓말마냥 차분했다.
하지만 더 움직일 수는 없었다.
영영 볼 수 없게 된 친구에게 다시 한번 버려졌을때, 다크펫은 더 움직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찌보면 자신을 버린 아이는 이제 영영 없건만, 전혀 만족하지 못하니 어딘가의 이야기처럼 사라질 수도 없었다.
복수도 성불도 할 수 없게 된 인형은 그대로 묘지에 묶여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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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그것을 친구라고 해야하나? 사실 이 근처에서 우는 사람들이나 화내는 사람들만 보이면 쪼르르 모여서 다닥다닥 천장에 매달린 애들- 어둠대신이라 한다- 이나 그 애나 비슷했다. 인근의 포켓몬들이야 이곳이 집이니까 알짱거린다쳐도, 이곳의 인간들은 이 무덤들을 보러 오건만, 그것은 매일 죽상으로 찾아와서 무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구경하거나, 아니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파도로 던지는 등 아주 지루하게 놀고 있었다.
어찌나 구린 표정으로 재미없게 놀던지, 다 귀찮았던 자신이 간만에 움직여서 아주 신나게 놀아주었다. 긴 여행동안 갈고 닦은 놀래키기 기술이라든지, 첫 친구가 싫증이 날 때마다 바꾸던 수십가지의 놀이라든지.
솔직히 즐겁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첫 친구를 매우 괴롭게 만들고 싶다는 집념과 별개로 그 기억은 정말 즐겁고 아름다운 기억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때는 그 친구가 자신과 놀아주는 것이었으면, 이번엔 자신이 이 애랑 놀아주는 것이니 어쩌면 놓는 것도 자신이 될 수가 있었다.
첫 친구는 사랑이 많았고,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 두번째 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아쉬워서라도 자신을 놓지 않을테다. 아낌없이 사랑하나 자신에게 싫증내지 못할 것이다. 아이가 종종 자신을 껴안고 얘기하던 '트레이너 여행'도, 이미 해본 것이니 더 잘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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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그 애가 무덤가에 발길을 끊었을 때는, 솔직히 다시 올 것이 왔다고 여겼다. 아이들은 아낌없이 사랑하고, 망설임없이 내친다. 익숙한 것과 옛 것은 자연스레 소홀해지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그것이 물건이었다. 하지만 다크펫은 그냥 물건이 아니라, 옛 주인에게 누구보다도 즐겁게 해코지를 하면서 만족할 수 있는 포켓몬이니 이번에야 말로 '두번째 친구'에게 잊지 못할 금을 그어줄 수 있을거라 기대하며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텅 비어 버린 집을 봤을때, 솔직히 고스트 포켓몬이라지만 살짝 '신세한탄'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꼈다. 아니, 어째 친하게 지내는 애들이 하나는 묘비가 되어버리고, 하나는 아예 집도 비우고 사라져 버린단 말인가. 이쯤되면 억울해서라도 한 대라도 때리게 해달라 빌고 싶었다. 무엇에 빌어야 하는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랬다.
다만 이전처럼 허탈하진 않았다. 첫 친구는 누가봐도 자신을 잊고 행복하게 지냈을 것 같지만, 두번째 친구는 자신이 없으면 처음 만났을때처럼 죽상을 하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 것이다. 이래서 첫 인상과 평소 어느정도 사생활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법이었다. 그렇다면 자신과 떨어진 두번째 친구는 어디선가 우울해하면서 아무도 좋아하지 않은 채 덩그러니 있을테지. 굳이 찾지 않아도 알아서 재미도 없고 웃기지도 않은 하루를 보낼테다. 원래부터 금이 가서 줄줄 새고 있던 녀석이니.
- .....
그런데, 그 친구도 비석으로 만나면 어쩌지?
느긋하게 흘러가던 상상이 순식간에 뚝 멎었다. 첫번째 친구를 다시 만나 얼굴을 본 뒤 잊지 못할 상처를 줄 거라 생각하며 달려왔건만, 그 친구는 영영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버려질 때 금이 간 마음은 영영 다시 붙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두번째도 또 만났는데 만날 수 없는 모습이라면? 솔직히 어린애가 비석이 될 일이 얼마나 있겠냐 싶지만, 재수가 없으면 또 그때처럼 무기력하게 바닥에 누워있을수도 있었다.
또 다시 얼굴도 보지 못하고 영영 헤어질 수도 있었다.
다크펫은 다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사연 많은 부부가 있었는데, 둘이 헤어진 뒤에 딸은 저기 눈 덮인 산맥으로 갔다더라. 하는 뜬소문을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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