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기억속에 있는 바다는 끊임없이 밀려오고 부서지길 반복하는 파도와, 그 앞을 가로막는 커다랗고 거친 절벽의 모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로소 평화를 찾은 연지섬의 해변은 늘 막연히 생각하던 그림책의 삽화나, TV에서 매년 여름철마다 지나가듯이 보여주던 꿈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라든지, 흡사 에메랄드나 아쿠아마린이 생각나는 녹색의 바다라든지.
뾰족한 바위나 둥글둥글하게 닳은 조약돌 대신 반짝이는 고운 모래가 한 손 가득히 잡혔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스르르 빠져나가는 감각이 묘하게 허망하면서도 간질간질해, 몇번이고 한 줌씩 집었다가 다시 흩날리기를 반복했다.
"양배추야, 그거 알아? 이런 고운 모래나 재로 유리를 만들 수 있대."
- ......
풍경도 제 일이 아닌 것 마냥 무심히 스쳐가던 녀석이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춰 이쪽을 보았다. 평소에는 생각을 영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제가 관심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기울이듯이 유심히 집중하고 있었다.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더 얘기를 내놓아라 재촉하는 것 같이도 보여 작게 웃었다.
"호연지방에는 유리 피리를 만드는 장인들이 있대. 나중에 성도지방에선 규토리 볼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그 다음에는 호연지방으로 가보는거야... 거긴 온통 바다가 있으니까, 무송산맥에서 볼 수 있는 재료들과는 다른 재료도 많을거야."
열매로 볼을 만든다든지, 이런 모래로 단단하고 투명한 유리를 만드는 것이 영 와닿진 않는지 녀석은 턱을 괴는 시늉을 하더니 모래사장에 털푸덕 주저앉아 신중하게 재료를 고르듯 모래를 제자리에서 한 줌,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줌씩 집었다가 날리기를 반복했다. 뭔가 괜찮아 보이는게 있어? 마주보고 앉아 모래를 파내고 있으려니, 그 사이로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드러났다. 좀 더 주변의 모래를 치우자 온전히 드러난 것은 꽃잎같기도 하고, 비늘같기도 한 조개껍데기였다. 기본적으로 깨끗한 흰색을 띄고 있었으나, 무늬와 껍질 전반에 무지개빛이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 !
이걸로 자개를 잘라낼 수 있을까? 고운비늘이나 용의 비늘같은 것들이나 진주와 어떻게 어우러질까? 조개껍질 방울도 이걸로 만들 수 있나? 깨끗하게 닦은 조개껍데기를 보고 있으려니 양배추가 땅을 파더니 연분홍색의 무언가를 건넸다...이번에는 정말 꽃잎을 닮은 색의 조개껍데기였다.
"연지섬은 조개껍데기도 엄청 예쁘네...
다른 색 껍데기도 있을까? 찾아보자..!"
양배추는 말이 끝나자마자 먼저 찾겠다는 듯이 빠르게 톳톳톳 뛰어가기 시작했다. 어째 진화하면서 어마어마하게 커진 망치의 크기에 비례하듯이, 달리기도 더 빨라진 파트너는 작정하고 달리면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래도 꾸준히 따라서 달리고 있으려니, 신나게 달려가던 녀석이 우뚝 멈추더니 이쪽을 바라봤다. 기다리는 것인가, 싶어 열심히 달려가면 다시 좀 더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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