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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테일_틸

[2주차] Ariel

by 배추쿵야 2025. 10. 27.

누가 그랬던가, 어느 사특한 정령이 포도나무에 동물의 피를 차례대로 뿌려 키운 뒤 그 열매로 만든 것이 술이라고.

 

술을 과하게 마시면 취하게 되고, 술에 절여져 이성을 놓은 인류는 생각이상으로 재밌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다만 그것을 발명한 주체가 사특한 무언가라고 하는 만큼 그 모습이 결코 아름답거나 바람직하진 않은건 당연했다. 솔직히 좋으면 인류가 다 해먹지 뭣하러 이 모든 해악은 사악한 존재의 탓이라고 음모론자마냥 책임을 피하겠는가? 

 

이곳 [물보라 주점] 도 여타의 평범한 주점들마냥 식사와 술을 파는 곳이었고, 평범하게 분위기를 해치는 인간은 내쫓았지만 운때가 맞으면 한편의 공연예술을 펼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보통은 서로 몸을 가누지 못해서 이게 격투인지 땅바닥vs 나를 의미하는 것인지 몰랐으나, 1. 도를 넘지 않는 추태를 보인다, 2. 당사자들이 가게 주인과 잘 아는 사이다, 3. 더럽게 자주 마주친다 같이 무언가 타이밍이 맞으면 일종의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퍼포먼스가 펼쳐지곤 했다. 이를테면.....

 

" @#$^%#@ [해석: 이 자식..오늘은 꼭 이긴다!] "

" #%$^^$&$ [해석: 이기고나 말, 해 이자식아! 허접 화이팅!] "

 

저기 주점 단골 에리얼씨 같은 케이스라든가. 

 

온몸을 꽁꽁 싸맨 의상과 묘하게 기이한 모습으로 얼굴을 가린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듯이, 주점 단골 에리얼씨는 마리드였다. 통상적인 이들이 그렇듯이 술만 들어가지 않으면 적당히 말이 없고 (물론 메모로 엄청 얘기한다) 왕년에 모험 좀 했었는지 수완도 좋아 도움을 받은 이들이 있어 주기적으로 저렇게 치고받으며 싸워도 주점 주인이 눈 감아줄 인덕은 있었으나, 인류라는 것이 은근 외관과 편견에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 잊을만할때쯤이면 '언데드'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저 양반도 적당히 팰(?) 것이지..하필이면 옆에 남은 머리를 뜯어버려선...이번이 몇회차더라?"

"그치....근데 저 인간도 말이 심했긴 해. 4회차."

"머리도 뜯고 한번만 더 그소리 하면 온몸의 털을 싹 밀어버릴거라 했잖냐."

"그랬는데 계속 덤빈다고? 이야..."

 

저기 저 오늘의 도전자로 말할 것 같으면 몇주전에 정줄 놓은 김에 언데드가 있어서 술맛 떨어진다 소리 했다가 옆에 그나마 남아있던 머리카락이 뜯긴 뒤 깨끗하게 밀려버린 뒤 리벤지를 노리는 중이었다. 어찌보면 과하게 무례한 소리를 했다가 민감한 부분을 골라서 공격당했다고 날뛰는 꼴이었으나.... 솔직히 한쪽이 무시하거나 압도적으로 짓눌러서 다음을 노리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데도 덤비는 걸 보면 싸우면서 친해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는 판이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상대가 멱살을 잡자 에리얼씨가 역으로 잡아서 넘겨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싸움..아니다, 퍼포먼스이자 대련을 시작하고 사람들이 막 집중하기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판 한가운데 난입한 주인이 두툼한 편지봉투 둘을 꺼냈다.

 

 

"에리얼씨, 오리한테 편지왔어."

"으어?"

 

언제든지 바닥을 구를 준비를 하던 에리얼씨는 편지를 보자마자 갑자기 두 발로 꼿꼿하게 섰다. 분명 아까만해도 호흡과 발음에서 과실주 냄새가 진동했을터. 구겨진 옷을 탈탈 턴 뒤 괴성을 지르며 (기합이라고 한다) 달려드는 상대의 멱살을 잡고 구긴 종이를 굴려버리듯이 가볍게 바닥으로 굴려버리자, 퍼포먼스는 그걸로 싱겁게(제대로 굴러서 볼링마냥 의자들을 흩뜨려 놓은 취객의 -악! 내 허리!- 비명이 들렸으나) 끝나버렸다. 

 

으이구,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사장이 물을 건네자 그대로 얼굴에 끼얹어버리고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이번에는 한층 명료해진 목소리였다.

 

 

"오리가? 걔가 벌써 왜 편지를 썼대?"

"몰라. 급하게 보냈는지 돈도 더 냈던데?"

 

 

 

---

 

 

[ 아빠에게.

안녕! 오리에요! 며칠전에 편지를 쓰긴 했는데, 한동안 편지를 쓰기 어려울 것 같아서 지금 보내봐요! 

잘 지내고 있어요? 아빠는 잘 지내고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물보라 주점 사장님이 손님 옷으로 바닥 닦는거 굳이 보고 싶지 않으니 술 좀 작작 마셔라고 걱정하던데, 너무 많이 마시진 마세요. 

저는 잘 지내요. 얼마전엔 굉장히 큰 의뢰를 받아서 몇 달 동안 밖에 나가게 되었어요. 아빠나 첫째 아빠한테는 몇 달이면 그렇게 길지도 않았겠지만, 그래도 처음 맡아 본 종류의 일이고 할 일도 많아서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얼굴만 보거나 얘기만 듣던 길드원들과도 계속 지내게 되는데 다들 좋으신 분들이에요.  ]

 

 

라는 단락으로 시작하는 쇠오리의 이야기는 제법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마수 하운드를 길들인 일, 두마리의 하운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같은 숙소를 쓰게 된 팀원과 룸메이트인 드래곤 소년에 대한 이야기, 엘릭시르를 채집하러 산책시간 내내 풀 속을 뒤지고 다닌 일 등등..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에 에리얼은 그 단락 사이에서 피보호자가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을 보며 설핏 웃었다.  쇠오리의 편지는 자신이 마주한 새로운 일, 재밌었던 일과 에리얼에 대한 구구절절한 걱정 및 잔소리로 빼곡히 채워져 있으면서도 정작 그 의뢰가 뭔지, 구체적으로 어딜 가는지, 어떤 구성인지에 대하여는 딱히 적지 않고 있었다. 아마 나름대로 보안을 위하여 가려야 할 걸 골라냈을테다.

 

"누가 가르쳤는지."

"걔 혼자 컸지. 에리얼씨가 우리 가게 바닥청소 했을때 끌고 간게 누군지 알아?"

"아아~ 몰라몰라. 오리는 나 좋아하니까 난 잘못 안했어."

"이것도 애비라고."

 

 

두번째 봉투는 조금 급하게 보낸 것인지 추가금을 내고 빠르게 보내는 인장이 찍혀있었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돈까지 쓴 걸까. 어쩐지 길드로 가기 전 용돈 주머니를 들고 쫄랑거리며 다니던 피보호자를 생각하며 다시 편지를 펼치자, 지나칠 수 없는 짧은 문장이 적혀있었다. 내용 자체는 주점에서 돌던 이야기를 적은거라 새롭진 않았으나, 풍문으로 지나치듯 듣는 것과 아는 이를 통해 듣는 것은 또다른 느낌을 주었다.

 

바람으로 떠돌던 소문이 불길하게 커져가는 기분이었다. 피보호자인 쇠오리는 한여름의 비바람에서 난 것이었으나 어떤 거친 바람은 모든 것을 삼키기도 하는 법이었고, 그건 같은 바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에리얼은 본래 잔소리를 듣는 입장에 가까웠으나 드물게 이런 불온함 앞에서는 쇠오리에게 보호자 다운 일을 해야한다는 자각은 있는 마리드였다. 다만 드물게 보호자 모드로 돌아선 그녀에게 한가지 난관이 있다면...

 

 

"근데..이거 그럼 편지를 어디로 부치면 되지?"

 

단델리온 길드로 부치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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