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508 [8] 모든 이야기에는 맺음이 존재한다 "아빠!!""틸!" 조금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모자를 쓰고, 검은 로렐라이 문양이 크게 그려진 가면을 쓴 이가 카페로 들어서자 쇠오리는 청록색의 잔상을 남기듯이 그 품에 파고 들었다. 통상적인 몸이 아니라 출렁, 하고 몸이 흔들리는 감각이 있었으나 이내 가느다란 손가락이 머리카락를 마구 볶듯이 짓궃게 쓰다듬은 뒤 냉큼 옆구리에 끼웠다. 꺄아아- 하는 비명소리 같은 소녀의 웃음과 큭큭 거리는 여인의 웃음이 어지럽게 뒤섞이며 이 기묘한 한쌍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여기 술은 있니?""카페라서 술은 안돼요~ 사과 파이 엄청 맛있어!""그런가? 그럼 이거랑 묽게 만든 블랙커피로." 2년하고도 2달. 짧다면 짧다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이 돈독한 부녀가 그 사이에 편지 몇장 빼고는 직접 만나지 않았다.. 2025. 12. 9. [-] 영웅들은 왕자의 사랑하는 들꽃을 구한 댓가로 그에게 열쇠를 건네 받았답니다. 그리고 길잡이의 안내를 받아 오랫동안 닫혀있던 여신의 보물고를 열 수 있게 되었지요. 그곳에 갇혀 있던 공주님은 영웅들을 환대하며 많은 선물을 주었습니다. 추위에 지친 몸을 감쌀 수 있는 옷을, 토벌을 앞둔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융숭한 대접을, 사악한 용에게 맞설 수 있는 거울을, 그리고 몸을 잃은 영웅들에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요.하지만 그 영광은 긴 고통과 역경을 이겨낸 영웅에게 응당 주어질 것이었으니, 역사속의 영웅이 아닌 자는 그 영광과 보상을 누리기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 보상이 없다면 누가 이 명예를 가치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 소원은 들었어. 하지만 보다시피, 난 여기서 움직일 수 없.. 2025. 12. 7. [팔로워 영입] > 시올 매달린 자의 나무에서 은 화살을 받자마자 신관에게 건네버린 것은, 예전에 하나뿐인 보호자를 잃었을때의 상실감을 어느정도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웜텟이 지나가듯 얘기하던 소원이 생각나기도 했다. 아끼는 가족과 멀리멀리 여행을 떠나, 적당히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면서 여행을 떠나 시올이 넓은 세계를 보게 하고 싶다던 소원 말이다. 본래 윈드워커들의 기질이 방랑과 고독이었지만, 그것이 마냥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슬프거나 안타까운 숙명이라 할 순 없었다. 그저 그것들을 심장에 품고 있으면 때로는 조금 쓸쓸하고, 때로는 거대한 세계 속에서 동떨어진 기분을 느끼게도 하지만, 동시에 너른 하늘로 뛰어들어 그 속을 노닐때의 자유로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태풍의 눈은 제 가족이 더 넓은 세상.. 2025. 12. 6. [마법사 시그르드] 서브퀘스트 ▶ 앎의 욕망 "오호..." 지갑을 새로 사야겠다. 슬슬 떡지기 시작하는 검은 털과 흉흉한 붉은 눈의 보팔은 이젠 거의 넝마가 된 지갑을 물고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변명을 하자면 백야의 신부와 그 들러리들을 상대로 이런저런 준비를 했고 크게 다쳐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어요~ 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못남+무책임함이 확실하게 도장으로 찍히는 대답이므로 그저 유리성의 오라클 앞에서 모르는 척 생글생글 웃을 뿐이었다. 다만 이 유쾌한 마법사는 먼 옛날 보팔을 고대병기로 움직이게 한 붉은 돌 못잖게 번쩍이는 빨간 눈이 꽤 흥미로웠는지 금방이라도 손대면 손가락을 소세지마냥 먹어버릴 기세의 그녀석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 보팔을 주신다고요.""네! 바이올렛이 그러는데, 아주 굉장한 애래요!""자동인형.. 2025. 12. 6. [각성] 뇌운 여름바람의 요람은 서머데일의 뇌운의 주, 비와 바람이 거대한 저기압에 섞여 움직이던 순간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납고 거친 바람이 일으키는 재해라고도 하지만 때론 어떤 뇌운은 견고한 벽과 같이 무겁고 단단할 때도 있었다. 아주 거대한 태풍이라도 까마득한 곳에서 내려다 본다면 그것은 바람과 구름, 비, 번개와 천둥으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두꺼운 벽에 가까운 것일테다. 그리고 용의 씨앗이 번개와 금속의 속성을 먹고 자라 온전히 우화한 모습이 날카롭게 베어내는 바람과 귀가 찢어질 고음이 아니라 묵직한 갑옷과 낮은 울음소리를 지니게 되는 것도 그 모습을 본뜬 것일지도 몰랐다. 밤의 장막이 깨지고 다시 한번 각성한 용의 씨앗은 폭풍의 요람에서 태어난 여름바람을 닮아버렸다. 그것은 자신을 키운 바람이 동경하.. 2025. 12. 4. [각성] Hurakán 작은 용의 씨앗이 하얀 용이 되고, 그것이 다시 각성하게 된 것에는 급변하는 주변 상황이 적잖게 영향을 미쳤을테다. 하늘을 실컷 날아다니다 자라버렸으나, 울새는 그 다음 단계로 나갈 생각은 딱히 없었다. 한번 성장한 뒤 변해버린 하얀 금속의 몸은 꽤 마음에 들었고, 조금 커져버렸으나 적당한 크기라 아직까지는 제 보호자인 어린 바람에게 더 머물며 오붓한 시간을 즐기고 맘껏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태양신의 얼굴이 보이는 낮에는 햇빛을 쐬며 함께 늘어지게 낮잠을 즐긴 뒤 여신의 장막이 드리우는 밤이 오면 어린 바람과 느긋하게 돌아다니는걸 하루의 일과로 고정해버렸으니 아마 별다른 일이 없다면 울새는 적어도 반세기 쯤은 이런 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그리고 장막이 걷히고 여명을 지나, 하얀 밤.. 2025. 12. 4. 이전 1 2 3 4 ··· 8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