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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테일_틸

[각성] Hurakán

by 배추쿵야 2025. 12. 4.

작은 용의 씨앗이 하얀 용이 되고, 그것이 다시 각성하게 된 것에는 급변하는 주변 상황이 적잖게 영향을 미쳤을테다. 하늘을 실컷 날아다니다 자라버렸으나, 울새는 그 다음 단계로 나갈 생각은 딱히 없었다. 한번 성장한 뒤 변해버린 하얀 금속의 몸은 꽤 마음에 들었고, 조금 커져버렸으나 적당한 크기라 아직까지는 제 보호자인 어린 바람에게 더 머물며 오붓한 시간을 즐기고 맘껏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태양신의 얼굴이 보이는 낮에는 햇빛을 쐬며 함께 늘어지게 낮잠을 즐긴 뒤 여신의 장막이 드리우는 밤이 오면 어린 바람과 느긋하게 돌아다니는걸 하루의 일과로 고정해버렸으니 아마 별다른 일이 없다면 울새는 적어도 반세기 쯤은 이런 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그리고 장막이 걷히고 여명을 지나, 하얀 밤이 시작되었다. 

 

여신의 순리마저 비틀며 왜곡시키는 대재앙의 힘 앞에서 당연한 것들이 뒤틀리는 것을 보며 압도당하던 것은 마법사와 선택받은 용사들 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날이 밝듯 어둠이 물러났으나, 동시에 영원한 하얀 어둠이 오는 것을 보며 드래곤의 정령은 한참을 그 희게 빛나는 시간을 바라보아야 했다. 

 

"울새야."

자신을 품어주고 함께 날던 여름바람이 말했다. 바람 스스로는 자신이 딱히 변한 게 없다 말하겠지만, 울새가 본 보호자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혈룡을 물리치고, 이무기를 막는 선택을 하고, 끝내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는 가늠할 수 없는 재앙 앞에 서기로 마음 먹는 것을 거치며 무언가 바뀌었다. 아니, 인류는 이것을 성장이라고 했던가. 

 

"혹시 나랑 헤어지게 되면, 서머데일로 돌아가. 

거긴 날씨도 따뜻하고, 태양빛도 강해서 네가 살기 좋을거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과 이별을 입에 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여름바람은 자신의 삶과 이어지는 시간을 사랑했으니, 이것은 비관적인 가정은 아니었다. 이것은 자신이 돌보는 드래곤의 정령에 대한 책임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향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여름바람의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튀었다. 서머데일의 더위와, 세계수의 아름다움, 바다와 비의 근사함.....그리고 무서울정도로 압도적이며 아름다운 폭풍우- 그녀의 요람의 이야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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