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지갑을 새로 사야겠다. 슬슬 떡지기 시작하는 검은 털과 흉흉한 붉은 눈의 보팔은 이젠 거의 넝마가 된 지갑을 물고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변명을 하자면 백야의 신부와 그 들러리들을 상대로 이런저런 준비를 했고 크게 다쳐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어요~ 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못남+무책임함이 확실하게 도장으로 찍히는 대답이므로 그저 유리성의 오라클 앞에서 모르는 척 생글생글 웃을 뿐이었다. 다만 이 유쾌한 마법사는 먼 옛날 보팔을 고대병기로 움직이게 한 붉은 돌 못잖게 번쩍이는 빨간 눈이 꽤 흥미로웠는지 금방이라도 손대면 손가락을 소세지마냥 먹어버릴 기세의 그녀석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 보팔을 주신다고요."
"네! 바이올렛이 그러는데, 아주 굉장한 애래요!"
"자동인형 보팔이라면 유명하죠. 똑같은 이름을 지닌 옛 소환수와 매우 닮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허억, 진짜요? 그럼 그 소환수 보팔은 어떻게 만날 수 있어요? 걔도 '섬멸모드'가 있나요?"
"거기에 대해서도 들으신 모양이군요."
자동인형 보팔은 사랑스러운 외모와 누구에게나 잘 맞춰주는 유연성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했으나, 계절서 여우지팡이를 재편찬하면서 몇번이고 보았던 범상찮은 친구가 생각나는 모습이기도 했다. 보석을 품어버린 악마, 붉은 눈의 친구, 그리고 달 그림자에 숨은 토끼. 여기서 보팔을 연상케하는 표현은 붉은 눈과 토끼라는 단어 뿐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거 귀한 걸 받게 되는군요. 옛 오라클의 지식과 기술이 집약된 인형의 껍데기라... 꽤 재밌는 연구가 되겠습니다."
"보팔을 개조하시려고요? 너무 무리시키진 마세요~"
"아, 그럼요. 저는 귀한 연구자료를 망가트리거나 하진 않습니다. 어떻게든 잘 고쳐보겠습니다."
생긋, 시그르드는 예의 그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라클 시그르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라면 적당히 친절하고 문제없는 대답이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저 로비 어딘가에 자리한 거대한 빅레드버튼을 생각한다면 그 연구라는 것이 마냥 호락호락한 건 아닐거라는 예감 비스무리한 것이 닥쳐왔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 '섬멸모드'야 말로 보팔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것일까?"
"그런고로, 여기 있는 아티팩트 중에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으음- 전 얘로 부탁해요."
"아, 피노키오. 가디언으로 아주 쓸 만하죠. 좀 짓궃지만, 사용자의 말은 아주 잘 따르는 충실한 골렘이랍니다."
"응, 고향에 있는 아빠한테 좋은 친구를 붙여주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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