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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테일_틸

[보팔] 서브퀘스트 ▶ 그 불길한 붉은 눈의 검은 토끼

by 배추쿵야 2025. 12. 1.

"좋아."

- .....

 

원정이 시작될때쯤 페이베리에게 '무기'에 대하여 간단한 상담 겸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거대한 도끼를 나무 막대기마냥 휘두르며 '파괴'하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길드 넘버원과 달리, 이 2년짜리 용병은 무기를 다룰 줄은 알았으나 손에 익은 무기를 가지고 어떠한 경지에 오르는 것은 아직 한참 멀었던 터였다. 그때 페이베리의 말로는 '어떤 무기를 쓰냐' 에 따라 단련해야 할 포인트가 다르다고 했었다.

 

그 뒤로 몇번 그가 단련할 때 찾아가 시범을 보거나 무기를 쥐어봤는데, 가볍게 도끼를 휘두르고, 활을 당기고, 휴대하던 단검을 하나 꺼내 휘두르는 것을 보면서 몸을 쓰는 부위와 자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몇번 더 움직인 끝에 깨달은 것은 일단 단검술이 꽤 잘 맞고 재밌다는 점이었다.

 

"얍."

 

칼라그의 약속을 겨누자 얌전히 입을 오물거리던 보팔의 눈이 번쩍, 하고 빛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눈 앞으로 다가와 깨물려는 듯 머리를 내밀었다. 아무리 인형마냥 사랑스러운 아티팩트라도 엄연한 병기라는 걸 가르쳐 주려는 것인지 예상했던 것보다 민첩하고 군더더기 없는 '습격'에 조금 긴장하며 재빨리 검을 내지르자 아작. 하고 검이 이빨 사이에 물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크게 휘둘러 보팔을 떨쳐내자, 녀석은 가볍게 허공을 빙글 돈 뒤 벽을 박차고 이쪽으로 다시 날아왔다.

 

그대로 찌르는 것은 놀이가 아니다. 그리 판단하고 날을 빙글 돌린 뒤 다시 쳐내자 이번에는 작은 앞발이 묵직하게 날의 면을 때려와 손목이 저릿했다. 아마 근접전에 단련된 아티팩트라면 이 공격이 훨씬 더 묵직하고, 칼을 놓치게 만드는 것에 집중했을거니 어딜보나 보팔은 기습과 빠른 기동성에 중점을 둔 녀석이 맞았다. 진짜로 상대를 섬멸할 목적이었으면 빠르게 습격해서 물어뜯거나 멀리 날아가서 빔을 쏴버렸겠지. 

 

그럼 결국 이 놀이는 힘이 아니라 누가 더 빠르게 움직이고 상대를 몰아붙이냐가 관건이었다. 속도하면 윈드워커가 질 수 없지. 괜히 슬금슬금 올라오는 경쟁심에 단검을 잡고 웃자, 보팔은 허공에 뜬 채 그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날이 다 망가졌네~"

- ....(야금야금)

 

자고 일어나면 한동안 팔을 드는게 어려울지도 몰랐다. 힘이 빠질대로 빠져버린 채로 맥없이 삶은 당근을 집어 먹고 있으려니, 생당근을 와삭와삭 갉아먹던 보팔이 다시 이쪽을 빤히 보았다. 새까만 털에 박힌 붉은 눈이 제법 사랑스러우면서도 섬뜩했으나, 때로는 어떤 싸움은 상대의 살벌함마저 무난히 넘기게 만들 교류이기도 했다.

 

"삶은 당근 먹어볼래? 더 달아."

- .....

 

식어버린 삶은 당근을 내밀자, 보팔은 말없이 두 손에 그것을 끌어안고 다시 갉아먹기 시작했다.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생당근 못잖게 빠르게 당근이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