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산맥은 거친 능선과 다소 가혹한 기후로 어느 정도 산길에 익숙한 이가 아니면 쉽게 넘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그 너머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역시, 한동안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았을 정도로 접근성이 떨어졌으나 어디든 당장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혹독한 곳이 아니라면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존재가 있는 법이었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인해야 하는지, 아니면 강인한 것들만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몰랐지만... 여하튼 산맥에 사는 포켓몬들 중에는 꽤나 사납고 터프한 녀석들이 많은 편이었다.
이곳에 사는 것들은 대체로 강인했다. 그건 포켓몬뿐만 아니라 인간도 그러했으며, 그곳에서 태어나서 올해로 열두살이 된 소년도 그러했다. 유성산맥의 혹독한 추위와 척박하고 험난한 절벽, 그리고 지루할 정도로 눈만 내리는 환경을 제외하고라도 소년을 단련해 줄 것은 아주 많았다.
이를테면 보살펴 줄 사람이 없어 혼자 알아서 챙겨야 한다든지, 가끔 보다 못한 이웃의 참견에 의지해서 무언가를 간신히 배운다든지, 그나마 함께 사는 보호자는 볼 때마다 늘 화가 나 있어서 자신에게 화풀이를 한다든지. 흔하다면 흔한 고난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소년은 이곳에 사는 것들을 훌륭하게 닮아있었다.
지극하게 건강해서 감기 한번 제대로 걸리지 않았으며, 어지간히 다쳐도 꽤 빨리 나을 정도로 여러모로 튼튼했다. 조금 걱정이 많거나 오지랖이 넓은 이웃들이 가끔 보러오고, 몇 가지를 가르쳐 주니 곧잘 혼자서도 지내니 그리 손이 가지 않는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싸늘하게 굳어 있던 작은 방 한 칸에 훈기가 조금씩 돌기 시작했다. 조금 더웠지만 아랫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이불 덩어리를 생각하면 아마 한동안은 계속 덥게 지내야 할 것 같았다. 옆집 A 아저씨한테 반팔 티셔츠라도 빌려달라고 할까? 그리 생각하며 구석에 처박혀있던 노트를 깔고 끄적끄적,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열두 살 인생, 일기는커녕 기록이랑도 연관 없는 삶이었으나 오늘부터라도 무언가 적어보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뭐든 모를 때는 적어둬야 참고하기가 편했으니까. A 아저씨는 이걸 '육아일기'라고 했다.
X월 X일.
오늘은 작은 아버지가 없는 날이다. 아직까지 안 오시는걸 보니 어둠길에서 돈이 아직 안 떨어지셨나 보다.
사실 작은 아버지가 있으면 조금 시끄럽지만 오늘은 없어서 다행이다. 왜냐면
(잉크 뭉친 것을 닦은 흔적) 동생이 생겼으니까.
오늘 누가 문을 두드리길래 나가봤더니 아주머니 한 명이 있었다.
내 동생인데, 키우기 힘드니까 만든 놈이 책임지라고 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사고를 친 것 같다. 나도 아버지 얼굴은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아직 안 죽고 잘 살아있나 보다. 동생도 만들고.
최선을 다해서 말려봤다. 아주머니가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은데, 그 애는 우리 집에 오면 힘들다. 날씨도 춥고, 주변에는 길도 험하고, 아버지는 전혀 못 볼 거고, 돈도 없고, 작은 아버지가 화낼 거고, 무엇보다 그 애는 딱히 건강하지도 않아 보였다.
동생을 위해 좀 더 좋은 곳에 데려가면 안 될까요?라고 했는데도 아주머니는 여기에 두고 가셨다. 어차피 맡을 거 궁금한 거라도 물어볼걸. 추위를 많이 타는지, 혹시 감기에 잘 걸리는지, 못 먹는 음식이라도 있는지.... 가자마자 춥다고 떨기 시작해서 오래간만에 불도 올렸다.
한동안 작은 아버지가 오지 말아야 할 텐데. 애(검열)가 늘었다고 화낼 거야.
그래도 이젠 혼자가 아니니까 덜 심심할 거다. 게다가 동생은 여기서 살아야 하니까,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만 보살펴야지. 아주머니에게 들었는데, '준성인'이라는 것이 되면 어디든 일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3년만 기다리면 되고, 동생도 적당한 나이에 순례여행까지 하게 되면 머무를 곳이 생길 테니 그때까지만 키워야지.
잘 부탁해.
좋은 가족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같이 있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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