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폭력/가정 학대 요소가 있습니다.
모든 이웃이 완벽하고 잘 맞으라는 법은 세상에 없었고, 생각보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담판 짓기 어려운 이웃이 많았다. A씨의 이웃 놈팽이 또한 그렇게 건드리기 애매한 부류였으나 동시에 가장 눈이 가고 마음쓰이는 조카들을 데리고 있기도 했다. 지극정성까진 아니지만 애들이 저 놈팽이 성질머리를 보고 듣는게 불쌍해서 종종 챙겨주곤 했었다.
그 아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더럽고 치사한 꼴을 보면 도망치는게 당연한 일이었으나, 인사 하나 없이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아주 조금 섭섭했고 아주 많이 걱정되었다. 아니, 차라리 저런 인간 밑에서 크느니 알아서 자기 갈 길을 가는게 나은것일까. 적어도 그 '숙부'라는 놈만 없으면 그 애들은 어딜가든 잘 지낼 것이다. 오빠는 어디에서든 잘 적응했고, 동생은 어디에서든 결코 속지 않을테니 서로 못난 점을 잘 채워주겠지.
그 인간은 보통 이 동네에 붙어있진 않았지만 집에 있을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제 밑에 있는 애들을 괴롭혔다. 오히려 오누이가 사라진 다음에는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매우 조용하게, 없는 듯이 마을을 배회하곤 했다. 혹시나 제 가족들에게 하는 버릇이 나올까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말라 했지만 걸음걸음마다 위태롭게 절뚝이며 유령마냥 다니는 모습을 보아하니 어디서 행패라도 부리다가 단단히 얻어 맞은 듯 보였다.
자업자득이지.
한동안 돌아다니던 달갑지 않은 이웃은 어느 순간 이 마을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몇 해 뒤, 플로레지방이 불길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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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누이의 가족관은 평범함에서 조금 어긋나있었다. 애초부터 혈연관계는 어느정도 있었으나 시작이 전혀 달랐고, 둘에게 있어서 가족은 안전함이 아니라 위협이나 상처를 주는 것에 가까운지라 사이가 얼마냐 가깝냐와 별개로 둘은 서로를 '가족' 이라 지칭하진 않았다. 약 8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동생이 오빠를 꿋꿋하게 이름으로 지칭하고 다닌 무례는 아마 서로를 형제라고 인식하지 않으려는 의식에서 발현된 것이리라.
가족이니 형제니, 그런건 잘 모르지만 차이브는 자신의 품에 떨어진 동생을 어느정도 키워서 독립시킬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리'의 큰 개체가 해야할 일이자 약속이었다. 그리고 동생이 잘 자라기 위해선 보호자가 없고, 이곳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안온한 분위기가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하지 않을 짓을 했다. 시간을 벌고 위험요소를 줄이기 위해 자신의 위협이었던 보호자(가족)에게 말을 걸고, 협상을 했으며 지낼 곳을 찾기 위해 그리 흥미롭지 않던 순례여행을 떠나 플로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었다. 잘 자랄 수 있는 둥지같은 곳이라도 하나 있다면, 그 사람과 영영 떨어지면 모두가 행복할거라 생각했다.
다만 제라는 모든 것을 싫어한 만큼 자신을 키워준 이 가족을 굉장히 좋아했으며,
이 가족을 좋아한 만큼 그를 괴롭히는 또다른 가족을 적이라 간주한지라 인생 처음으로 부당할 정도로 압도적인 상대에게 싸움을 걸었다. 모든 것이 싫고 예민했던 아이는 제 위험보다 그 불쾌함과 걱정을 더 견디기 힘들어했다.
- 제라?
그렇게 무모한 와중에 또 어떤 점이 가장 상대에게 상처가 될 지는 잘 알고 있던터라 매섭게 찔러왔을테고, 자극당한 적을 마주한 그 싸움의 결말은 꽤 처참했다. 압도적으로 얻어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형제를 보았을 때 기분이 어땠던가. 익숙한 흔적과 범상찮은 상처를 보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남았는지, 얼마나 아픈지 기억났을 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억지로 이어오던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깨고 미워하는 것을 하나 더 박살낼 수 있어 기분 좋아 보이던 보호자의 얼굴을 봤을 때 어떻게 움직였던가.
딱히 기억나진 않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고, 의미도 없었다. 의문을 품는 것은 이미 익숙해졌을 때 그만둔지 오래였다.
다만 자신은 쏟아지던 고통에 익숙해진만큼 어떤 식으로 고통을 줄 수 있는지도 아주 잘 배울 수 있었다.
보호자가 자신에게 알려준 것은 그뿐이었니까.
배운만큼 돌려줄 정도로 가르치다니, 이 얼마나 뼛속깊이 새겨진 가르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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