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이라면 길진 않으나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까지는 어느정도 나쁘지 않은 길이의 시간이었다. 그러니 양배추가 자신의 동거인- 현재는 트레이넌가 파트넌가, 하여튼 그런게 되어있다- 이자 공동 작업자가 한때 친하게 지냈던 포켓몬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본래 자신의 파트너는 언행으로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기 보단 그냥 입을 닫아버리는 것을 더 익숙하게 여기는 부류였지만, 양배추는 함께 사는 가족이나, 소속된 마을 사람들 같이 잘 보일 필요가 없던 관계였는지라 아이러니 하게도 입 속에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양배추는 자신의 일을 도와주며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이 공동작업자가 꽤 마음에 들었고, 그러니 소녀가 옆에서 조금씩, 꽤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도 그저 묵묵히 들어주었다.....당연히 귀가 있으니 들었고, 머리가 있고 관심이 있으니 그 이야기를 기억했다. 파트너가 안다면 실언이었다고 잊어달라 부탁했겠지만 돌에 새기고 쇠에 새긴 글씨가 지워지지 않듯이, 어딘가 말 못할 풀이는 그대로 새겨져서 남았다.
섭섭했냐, 라고 말하기엔 양배추는 그리 섬세하거나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톳마을의 바위동굴에서 파트너가 옛 친구에게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 고 했을 때, 양배추는 제 파트너의 단단히 웅크린 채 굳어져 고치가 되어버린 심장 속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 역시 궁극의 재료를 찾겠다는 어떤 여로旅路를 오래전부터 그리고 있었으니까.
그 길이 어떤 방식인지는 구체적으로 그리진 않았지만, 곧게 뻗었든 구불구불하게 휘어졌든, 길이 정리되지 않아 울퉁불퉁하여 발이 아프도록 걸어도 절반도 채 걷지 못하게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고개를 들어 저 길 끝에는 자신이 원하던 것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니까.
그것은 마치 여행자가 길잡이 별을 보고 길을 찾는 원리와도 같았다.
"양배추야..이거봐..."
사람도 포켓몬도 드럽게 많은 거리를 한참 쏘다니면서 달콤한 간식과 신선한 포도를 양껏 먹은 뒤에 포만감을 즐기고 있으려니, 흡사 주위에 누가 있는지 거듭 살펴보던 이가 조심스레 무언가를 하나 꺼냈다.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직사각형의 케이스 같았는데, 재질은 나무. 그리고 뚜껑 위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요 파트너는 아직 나무를 다룬 적은 없을텐데. 라 생각하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보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는 듯 민망하게 눈을 옆으로 굴렸다.
"풍물마을에서 주문한..배지케이스야..
나...이것저것 목표는 있지만....이번 목표는 나 혼자 이룰 수 없어서...부탁하려고."
아무래도 열심히 뺑이쳐서 (양배추의 감상이다) 손잡이를 죽어라 완성한 보람이 있었나보다. 인간들의 여행 첫날만 하더라도 얼타던 파트너는, 이제 제법 이것저것 흥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 배지 케이스에...우로지방의 배지를 다 모으고 싶어....
물론..다른 캠프 사람들만큼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진 못하겠지만.....그래도 너희가 도와줘야 잘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영영 굳어져 있을 것 같던 고치가 슬슬 실이 되어 풀리기 시작했다.
장인으로서는 아주 기꺼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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