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떠도는 이가 맺는 인간관계란 안정이라든지, 건전함이란 단어와는 꽤 먼 편이었다. 그와중에도 운인지, 아니면 그 인생의 천칭이 적당히 자비를 베풀어 다시 한번 균형을 맞춰준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 불길한 '지인'들에게서 뜯기는 것도 많았으나 배워가는게 제법 있었다. 이를테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적응력이라든가, 자신이 구르더라도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뻔뻔함이라든가, 그리고 자신의 짐과 허물을 마주하는 다양한 시선이라든가. 그리고 그 불안정하고 불건전한 이들은 '정면승부' 와는 거리가 먼 족속인지라, 다양한 방식으로 허물과 과거를 피하거나 외면하거나 때로는 비틀린 시선으로 보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무게를 지고 힘겨워 하며 멈춰있는 트레이너는, 꽤나 책임감이 강한 축에 속한다 생각했다. 다른 이들도 이러한 것을 알고 있어 자신의 허물을 지고 나아가려 하는 것을 응원하고 때로는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보다도 여기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올바른 시선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더 나은 태도를 알고 있을테다.
죄책감이라는 것은 무게를 잠시 잊을 뿐, 자각하는 순간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반추할 수록 끊임없이 그 무게를 불려나간다. 흡사 맞으면 맞을 수록 튼튼하게 되는 몇몇 포켓몬들의 능력을 떠올리게 만드는 원리였다.
초이스는 그렇게 변화무쌍하게 드러나고 무거워지는 짐을 진 채 늪에 잠긴 듯 걸음을 걷고 있었으나, 결코 멈추지 않는 이였다. 하지만 거기 얹어진 많은 것의 무게 또한 수시로 몸집을 키웠다가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하며 꾸준히 발목을 잡고 있었다. 아마 과거에는 그것이 버거워 몇번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외면할 수 없으니 남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징벌이라는 수단으로 생각하며 허물을 마주볼 수 있게 하는 것.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해도 이미 저지른 것은 저지른 것이니 그걸 굳이 부정해봤자 소용없을테다.
"나 같은 사람... 러닝 메이트로 두면 정말 괴로울 걸.
차이브 씨 발목이나 잡을지도 모르구, 배틀나이츠 같은 게 된다면 나 때문에 괜히 차이브 씨까지 밥 먹듯 욕 먹을지도 모르는데..."
"그래? 내가 말 꺼내놓고 걱정하긴 했는데...
내가 걱정한 건 전혀 다른거야."
누군가에게 무언가가 '되겠다' 고 말한 것이 이번이 세번째였다. 어떤 존재에게 어떤 의미/ 어떤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만큼 그걸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이 버겁다는 걸 알아, 첫번째 실패 이후로 굳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특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뿌리가 없었고, 그랬기에 한없이 떠돌뿐이었다.
"러닝메이트는 적어도 같거나, 아니면 엇비슷하게 달려야하잖아? 메이트 하겠다고 했다가 뒤처지기라도 하면 부끄럽고 미안해서라도 계속 노력해서 베테랑 흉내라도 내야 할텐데, 빨리 낼 수 있을까~ 그정도가 고민이었. 나, 공부는 잘 못하니까."
누군가에게 무엇이 된다는 것은 힘들고 무겁다. 스스로 나란히 달리겠다 선언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실패했던 자신이 붙잡았다. 너는 그와 함께 달릴 수 없으니 모르는 척 철회하라고.
아, 그러고보니 스텔라시티는 필기시험이라 했던가. 조금 뒤의 미래 (5년 후)를 생각하자 위험예지라도 하듯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슬쩍 올라오기 시작했다. 초이스의 저 말은 캠프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외울정도로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있으나, 단순히 자기비하만의 의미는 아닐테다. 스스로의 허물이 자랑스럽지 않아 얼버무리지만 그가 숨기는 만큼 그 허물이 단순한 것이라 치부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진지하게 법의 심판을 받고 질타를 받을 정도로 무거운 것일지도 모르고, 걸음을 멈춘 뒤 끊임없이 땅으로 떨어지고 가라앉는만큼의 존재감과 무게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욕 먹는 건 딱히 상관없어. 초이스씨."
하지만, 이쪽도 미움과 질타는 익숙했다. 악당이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원한을 사고 미움을 받으며,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 때로는 존재 자체로 미움과 질타를 받는 것도 있기 마련이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악당보다는 이방인을 더 싫어하거든. 그리고 나는 여길 떠난 뒤로 늘 이방인이었고."
악당이 '미움받는 것' 이라면, 이방인은 '경계당하는 것'. 내용물은 다르지만 결국 그것이 족쇄가 되는 것은 같았다. 미움이 익숙하고 다른 이들을 묶어둘 위험이 있는 것은 같았다.
"그나저나, 그럼 내 실력보다는 그게 걱정이란 말이지?
그게 괜찮다면, 내가 러닝메이트 해도 돼? 나도 이러는 거 처음이라, 좀 무섭긴 해. 이렇게 말해놓고, 정말 초이스씨에게 아무것도 못 될까봐."
초이스는,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힘과 실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자신은? 난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관문 앞에서 긴장하고, 때를 놓칠까봐 걱정하며 간신히 넘어온 시간을 반추하니 마음이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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