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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렌리시

[칼렌리시] Side

by 배추쿵야 2021. 4. 29.

1. Side. L.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적당히 바쁘고, 지칠때쯤이면 적당히 숨돌릴 수 있는 시간이 났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날이라면 이런 도입부도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니까.

 

 

 

 

리시안의 집은 물풍경시티의 한구석, 상가가 몰려있고 골목이 어지러이 뻗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나의 관문을 오가는 관광객, 선원, 기타 외부인들을 위한 식당과 술집, 숙박시설이 마구 세워져 있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어릴때 멋모르고 헤매다가 길을 조금만 잘못 들어도 으슥한 곳으로 빠지기 일쑤거나, 형과 누나가 불미스러운 일을 계획하거나 어른들을 피해서 도망갈때 골목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기도 했다.

 

 

다만 사람이란 것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20년이 넘도록 같은 풍경을 보고 손 잡혀 끌려다니다보면 싫어도 익히기 마련인지라 전혀 엉뚱한 곳을 제외하고는 어느정도 지리를 알고 있었다. 여기는 취객들이 주로 토하는 곳, 여기는 어디어디 건물로 빠지는 지름길, 여기에서는 그런 사건이…. 골목길을 볼때마다 들었던 이야기, 보았던 장면이 떠오르며 길의 방향이 선명하게 잡혔다. 이곳의 주민들은 모두 그러했다.

 

 

 

그리고 가장 익숙한 풍경은, 역시 사무실이 자리한 골목 근처였다. 쭉 길을 따라 걷다보면 보이는 낡은 건물과, 건물의 입구와 마주한 골목길 하나. 그리고 그 골목길을 비추듯 서 있는 가로등.. 그 아래에서 오도카니 서서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었던 작은 고디탱 한마리. 

 

 

부탁받은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 아래 익숙한 포켓몬이 한마리 오도카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석상마냥 가만히 못박히듯 서서 어느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는 고디탱 한마리. 

 

“먼로.”

 

이름을 부르자 고디탱, 먼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리시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인형같은 무표정. 허나 그 눈에 담은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알았기에, 리시안은 더 질책하는 대신 성큼성큼 걸어가 무릎을 굽히고 먼로와 시선을 맞추었다. 무언가에 집중할때 함부로 들어올리면 버둥거리며 싫어했으니까.

 

“이렇게 나와있으면 위험해. 무슨 일 있어?”

 

이 속을 읽기 어려운 고디탱은 행동의 맥락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사고뭉치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매우 영리해서 말만 잘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꼼짝않고 집을 지키고 있었으며, 위험한 곳을 잘 피하기도 했다. 그러니 먼로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굳이 밖으로 나간 것은 필시 무슨 큰일이 있으리라. 

다만 집에 뭔가 일이 벌어졌다면 머무르고 있는 다른 포켓몬들도 나왔을텐데, 여기엔 먼로 혼자 뿐이었다. 

 

 

“다른 애들은?”

리시안의 질문에 먼로는 가만히 시선을 사무실쪽으로 돌렸다. 다행히도 사장님께 집이 털렸다고 연락할 일은 없는 듯 했다… 그렇다면 답은 아까 먼로가 응시하고 있던 저 골목 너머에 있을 것이다.

 

“저기 뭐가 있어?”

녀석은 대답대신 아까처럼 가만히 골목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끔 길이 이리저리 구불구불 뚫린 곳이 있었는데, 바깥에서는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즉, 여기서 골목에 무슨일이 벌어졌는지는 직접 들어가야 알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직..해..떴으니까..괜찮겠지?”

 

해가 지기 시작하면 동네가 깨어나지만 그만큼 그림자가 짙어진다. 한쪽으로 꺾어진 커브길 너머서부터 뻗어나온 새까만 그림자가 골목길을 슬금슬금 삼키는 모양을 보니 저절로 긴장이 되어 주먹을 한번 꾹 쥐었다 폈다.

“미안하지만 얘들아, 좀 도와줄래?”

먼로를 안아들고 볼 안에서 쉬고 있던 애니와 오하라를 꺼냈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나른한 눈의 자마슈가 파르르 떨자 갓에서 반짝이는 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나룸퍼프는 너머에서 제 트레이너가 불안해하는 것을 보았는지 털을 부풀리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오하라! 잠깐만 위험하잖아!!”

강단있으나 동시에 호전적인 성격의 오하라는 허시 못잖게 앞서 싸우는 것을 선호했다. 혹시나 저 어둠속에서 최악의 상황이 튀어 나온다거나, 아니면.. 여기서는 드문일이었지만 팬텀같이 그림자에 서식하는 포켓몬이 튀어나와 공격한다면 치명적이었다.. 이전에 그림자 속에 숨어사는 포켓몬에게 공격 당한적이 있어 사실상 제일 걱정되는 것은 두번째 상황이었다.

 

잘 가다가 어디서 날아온 오물폭탄을 맞게 하고 싶진 않아 다급하게 걸음을 옮기려 하자, 망설임 없이 쑥쑥 가던 작은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오하라? 리시의 부름에 녀석은 나직히 무어라 울음소리를 내었다.

 

[ ….물 냄새. ]

 

 

“물 냄새?”

 

그리고 그제서야 그림자 너머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어둠을 뚫고 닿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 보통은 경계하며 신중하게 접근하겠지만 리시안 먼로에게는 한가지 능력이 있었다.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서 그 안에 있는 의사를 읽는 능력.

 

 

[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

 

 

울음소리 너머로 들리는 말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그 어둠속으로 뛰어들었다.

 

 

 

 

 

 

 

2. Side. C.

 

 

“.........”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은 삶과 죽음이라고 했던가. 누구나 원하든 원치않든 생을 받고, 원하든 원치않든 죽음을 받는다고. 저 높으신 왕성의 인간도, 바닥을 기는 빈민도 죽음 앞에선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수없는 전장과, 한번의 내전, 그리고 한번의 멸망을 거친 이에게 몇 없는 진리였다.

 

서로에게 창칼을 겨누며 고뇌하고 상처받던 이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 시간이 지난 뒤에 남는 것은 발에 채이던 수많은 시체와 두 발을 땅에 딛고 살아남은 인간과 마수뿐이었다. 이윽고 닥쳐온 영원한 겨울에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왕성을 향해 도망쳐 왔으며, 이따금 보이던 마수들은 도망치든 죽음을 맞이하든 새하얗게 내리는 눈과 얼어버린 땅바닥에 먹혀 사라져 버렸다. 

 

길바닥에 버려진 목숨이 몇개인데,

새로운 재앙이 닥쳐올때마다 그것은 잊혀진다. 그건 재앙이 내리기 전부터,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반복되던 일종의 사이클이었다. 

 

 그러니 남자가 굳이 이 삶에 의미를 찾을 이유는 없었다. 모든것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생과 사의 반복속에서 살아남느냐, 살아남지 못하느냐의 문제였다… 그저 의미있는 것은 얼마나 더 생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 그리고 얼마나 덜 고통스럽게 죽느냐 문제였다.

 

적어도 춥고 배고프게 서서히 죽어가고 싶진 않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라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러니 인간과 마수가 다를게 무엇이 있겠는가? 적어도 남자의 사고 방식은 마수의 것과 가까웠다.

 

 

 

 

---

 

 

쿨럭,

목구멍으로 넘어온 이물감에 가볍게 기침을 하자 격통과 함께 피가 튀었다. 그러니까, 지금, 무슨일이 벌어진 거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에 남자는 미처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분명, 고향을 찾았고, 아예 흔적마저 사라진 고향을 보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산을 오르다가, 이상한 마수를 만났고, 마수를 보다가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아.

그제서야 자신의 상태가 온전히 파악이 되었다. 

절벽에서 떨어져, 보기좋게 날카로운 바위에 꼬챙이가 되어버렸지.

 

 

 

웃고 싶은데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웃을수가 없었다. 희미하게 입가를 웃는 모양으로 일그러트렸지만 눈빛만은 서늘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우스운가? 아니, 전혀 우습지 않았다. 화가 나는가? 아니, 화가 나진 않았다.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언젠간 자신에게도 죽을때가 올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죽어가는’ 방식을 상상하진 않았다. 그건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죽음이었다. 반사적으로 숨을 스스로 끊기 위해 팔을 움직여 단검을 찾았지만 감각이 없었다.

 

 

'불쌍하잖아 형, 잡아먹지 말자. 응?'

 

 

 

가족애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이미 먼 일이었다. 

 

반이 넘도록 길바닥에 널부러진 시체꼴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무슨 추억이 있을까. 사실 얼굴도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 이름은 없었지. 허나 간간히 생각나는 사람은 몇있었다. 

 

이를테면 며칠을 굶다가 간신히 잡은 마수를 풀어주자고 하던 쬐끄만 녀석이라든가. 

 

작은 마수를 가엾게 여기면서 침대위에서 병마로 스러지던 제 목숨을 어찌하지 못하고 천천히 죽어가던 모습이 가끔 떠올랐다.

 

딱히 애정도 미련도 없었음에도 굳이 종종 생각나는 것은 그 죽어가던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리라.

 

 

결코 너와 같이 죽지 않겠다 생각했건만,

결국 너와 같은 끝을 맞이하는구나.

 

 

 

흐린 시야 안에 두마리의 마수가 불쑥 튀어나왔다.  금색 눈의 도마뱀 마수는 당황한듯,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눈을 굴려 제 몸을 쭉 훑어보더니 이마를 짚었다. 큰일이네, 네가 보기에도 답이 없을정도로 꼴이 안 좋은걸까. 이윽고 어린 거북이 마수가 울면서 가까이 가려는 걸 도마뱀 마수가 밀어내었다.

 

“.....”

 

 

누.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됐다. 어차피 새 마수의 한입 간식거리 같은 꼴로 뭘 하려느니 그냥 얌전히 끝을 맞이하자. 아주 잠깐 네가 대신 좀 끝내주면 안될까, 하고 부탁할까 생각했지만 첫 만남부터 제 의사와 관계없이 험한꼴을 당할 뻔- 식재료- 했는데 그동안 함께 해 온 의리로 끝은 알아서 가도록 놔줘야 했다. 

 

칼렌은 무언가 말하는 대신 천천히 시선을 둘에게서 떼었다. 

그 마수, 그 이상한 검은 마수.

 

검은 예복을 입은 것처럼 생긴 그 마수를 본 기억이 있었다. 이전에 왕성에 찾아온 점쟁이가 대동하고 있던 포켓몬이었지. 마수면서도 이상하게 눈빛이 인간마냥 깊어서 꽤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소문으로는 상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단숨에 읽어내고 별을 조종한다 했던가.  꽤 높으신 분들이 의지하기 좋겠구나- 같은 생각을 했었다만, 그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어디 그럴듯한 신전이나 건물에서 사람들이든 마수들이든 추앙과 경외를 받으며 속 편하게 살 줄 알았건만. 어째서 그 험한 산속에 있었던 것이며, 어째서 예언이니 운명이니 같은 애매한 얘기와 관련없는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며…

 

어째서 울고 있었지?

 

 

 

그와 동시에 훅, 하고 어둠이 내려앉듯 의식이 꺼져버렸다.

 

 

 

 

 

3. Side. L.

 

어둠속에서 조명이 비치듯 짙은 노을빛이 골목 구석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인만큼, 사방이 벽으로 막혀 까만 와중에 위는 작게 뚫려있어 빛이 그곳만 내리쬐는게 흡사 기이한 스포트라이트 같았다.

 

도움을 요청하던 목소리의 정체는 어린 꼬부기 한마리였다. 어둠을 뚫고 들이닥친 낯선 인간에 울음소리가 끊어지며, 꼬부기는 눈을 부릅뜨고 위협하듯이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괜찮아, 네가 우는 걸...들었어. 그리 말하며 시선을 들자, 저 끝에 벽에 기대어 쓰러진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온통 까만로브로 몸을 감싸고 있었지만 그 아래로 흥건히 흘러내리는 검은 얼룩은 이 사단이 난 이유를 어느정도 짐작케했다. 뭔진 모르지만 보통일이 아니다 싶어 응급센터에 연락을 취했다. 

 

 

“여보세요, 여기 물풍경시티 --스트릿 --번지 근천데요...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네… 많이 다친 것 같습니다..네..골목길이라.. 입구에 제 포켓몬을 데려다 놓을테니까..”

 

 

신고가 접수된 뒤 통화를 끄자, 다시 적막이 짓눌러왔다. 그저 으슥한 골목길에서 쓰러진 사람을 마주했건만 이렇게 숨이 막힐정도로 심장을 죄어 오는 감각은 단순히 낯설고 극단적인 상황의 문제가 아니었다. 

 

리시안 먼로는 이 감각을 알고 있었다. 3년전, 달맞이섬을 잠식한 악몽에 짓눌려 죽어가던 포켓몬을 품안에 안았을때의 감각이었다. 희미하게 꺼져가던 숨과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몸이 전해주던 영원한 침묵.

 

그때는 함께 고민하고 고통을 나눌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 이 무게는 저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었다. 어깨에 내려앉는 죽음의 무게가 숨이 막혀 밭은 숨을 내뱉다가, 천천히 쓰러진 이에게 다가갔다. 죽어간 것, 죽은 것의 감각은 알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늦지 않길 바라며 가까이 다가가 굳게 감긴 눈에 손을 가져가려 하는 순간이었다.

 

뒷통수을 거칠게 찔러오는 감각에 몸이 크게 앞으로 흔들리자 동시에 가느다란 가지같은 손가락이 뒷덜미를 움켜잡으며 고개를 뒤로 꺾었다. 갑자기 꺾인 목에 짧게 비명을 지르며 시야를 뒤로 돌리자, 인텔리레온 한마리가 흉흉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깐만… 해코지를 하려는건… 그 말마저 변명으로 느껴졌는지 녀석은 나머지 한 손을 가만히 이마를 향해 뻗어왔다. 

 

저 손 끝에서 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만,

 

 

 

“내 말 좀 들어..!! 병원에 연락했어…! 곧 사람들이 와서 네 트레이너를 데려갈거야.

치료만 받으면 살 수 있어! 그러니까…그 사람들은 공격하지 마!”

 

혹여나 인텔리레온이 제 트레이너를 데려가려는 구급대원을 공격하면 큰일이었다. 그러니 녀석을 안심시키기 위해 빠르게 상황을 읊은 뒤 숨이 막혀 콜록거리자, 뒷덜미를 움켜쥐고 있던 손이 느슨해졌다. 동시에 아까 울고 있던 꼬부기가 머리위에 애니를 데리고 주춤거리며 무어라 얘기하자,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리시안을 내동댕이쳤다.

 

멱살을 놓자마자 리시안은 천천히 다가가 굳게 닫힌 눈가를 매만졌다. 의학적인 소견은 없었지만, 적어도 감은 예리한 편이었고, 죽어가던 것과 죽은 것을 제 손으로 몇번 수습한적이 있으니 죽음이 내려앉은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희미한 숨이 와닿았다. 매우 알기 어려울정도로 희미하고 얕은 숨이었지만 분명 살아있었다.

 

“...살아있어.”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여러사람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이 숨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4. Side. C.

 

“......”

 

제일 먼저 느껴지던 것은 소독약 냄새였다. 이어 몸을 감싸는 푹신한 감각과 흐리지만 희미하게 비추는 빛에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가물거리는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하얀색, 그리고 익숙한….

 

“...마수?”

떨어질때 보았던 마수의 푸른눈과 같은 색이 잡혔다. 눈을 천천히 깜빡일때마다 뚜렷해지는 시야 안에 파란 눈을 지닌 작은 마수 한마리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 마수와 비슷한 인상에, 무엇보다 검은 예복같은 걸 걸치고 있는 것이 닮았지만 다른점이라면 그 마수의 크기가 인간의 여성- 조금 작은-과 같았다면, 이 마수는 그걸 인형크기로 축소한 듯한 모습이었다. 

 

새끼 마수인가? 몸을 일으키려하자 번지는 통증에 짧게 신음을 흘리며 제 몸을 돌아보니 처음보는 의복에 처음보는 자리에 눕혀져 있었다. 냄새나 분위기로 보아 치료소인가, 싶었지만 꽤나 높은이가 쓰는곳인지 쿠션은 푹신했으며, 시트는 얼룩 한점없이 깨끗했다. 꽤나 파격적인 꿈인걸. 이게 그건가? 주마등? 

 

상상도 못한 상황에 급기야 꿈같이 느껴졌다. 아니, 사실 50%정도는 꿈이 아닐까. 이 괴이한 새끼마수도 있고. 그리 생각하고 있으려니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분홍색의 무언가가 굴러들어오듯이 뛰쳐들어왔다.

 

“먼로!!!

너 임마..너..언제 여기까지 간거야?! 한참 찾았잖아!”

 

“.....먼로?”

 

분홍색의 무언가는...그냥 머리가 분홍색인 사람이었다. 조금 여린 인상의 젊은 남성. 새끼마수를 안고 일그러진 쥐 마수같은 표정을 짓던것도 잠시, 자신의 말에 정신을 차린듯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더니 다급하게 새끼마수를 안고 물러났다. 

딱히 놀린건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놀라게 만든 듯한 기분에 눈을 끔뻑이며 보고 있으려니 남자는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미안하다 말했다.

 

 

“이..일어나셨어요...미안해요...먼로가 워낙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

“....혹시...우리애가... 뭔가 실례라도…”

“......”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말없이 보고 있으니, 남자는 머릿속으로 무언가 실수한 것이 있는지 다급하게 짚어보는 표정을 지었다. 눈을 크게 뜨고 어쩔줄 모르는게 꼭 식량을 털다가 붙잡힌 쥐 마수가 생각나 좀 재밌었다.

 

 

“어..일단 죄송합니다...혹시 상처가 터졌거나 하면 제가 어떻게든...수습할테니까..”

“......”

“저..수상한 사람은 아니고요..여기 근처 사무소에 살고 있고...아참, 전 리시안 먼로라고 해요.

혹시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도토리를 잃어버린 쥐 마수마냥 안절부절 못하며 빙글빙글 돌던 - 실제로는 아니고 표정이- 남자는 무언가 좋은게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반짝 뜨더니 가지고 있던 지갑에서 작은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글자 모양이 조금 달랐지만, 자기 이름을 리시안 먼로라고 했으니 그런 이름일터. 묵묵히 그 쪽지- 명함-위에 반짝거리는 잉크로 적힌 글자를 한참 보고 있으려니,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시선이 살펴보듯이 머리에 꽂히는 것 같아 고개를 들어 남자를 빤히 보자 다시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엄청 잘 놀라네. 슬그머니 올라온 짓궃은 생각에손목을 붙잡고 이쪽으로 가볍게 끌어당기자, 다시 눈이 커지면서 시선이 뱅글뱅글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당황한 눈빛을 바로 마주하면서, 짐짓 다정하게 웃어보였다.

 

 

“칼렌.

그냥 칼렌이라고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