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포켓몬에 대한 악의 / 포켓몬을 공격하는 표현이 있음.
공기가 부드럽고 밤이 더이상 춥지 않을 시기가 되면 물 오른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시간을 모르는 이들은 그것으로 자신의 시간이 봄에 접어 들었음을 알기도 한다. 그 마수는 온전한 봄의 증거를 닮아있었다. 부드럽게 휘어진 나뭇가지의 새순 같기도 했으며, 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의 모습 같기도 했다. 목적지를 향해 걸을 때마다 부드럽게 길 위의 것을 스치는 바람처럼, 따뜻한 볕 아래를 거니는 하찮은 것들처럼 여린 날개를 파닥이며 주변을 맴돌았다.
칼렌은 딱히 마수에게 관심을 두는 편은 아니었다. 아마 우연의 일치로 이곳에 넘어온 동료가 아니었으면 이 여린 꽃봉오리를 닮은 마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을테다. 그저 죽음 직전에 스치듯이 눈에 담긴 녹색 잔상의 기억에서 기시감을 느꼈을테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인가?"
이 여린 순을 닮은 마수의 힘은 시공을 넘나드는 것. 단어 하나하나가 현실과는 거리가 억만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능력이었지만, 주워들은 지식과 직감은 이것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수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그저 동화책에 나오는 서툰 그림이나 귀엽게 보이는 인형마냥 동글동글하고 올망졸망한 이목구비를 지닌 이것은 새파란 눈으로 자신을 응시할 뿐이었다. 마수라면 마수답게, 인간을 이해할 필요없이 그저 제 뜻대로 움직이면 될텐데도.
이건 꼭 자신의 뜻을 묻는 것 처럼 보이지 않나.
[ 당연히 얘네들도 다 생각하고 말하죠! 우리가 못 알아듣는거지, 포켓몬들도 자기들 나름대로 얘기하고 우리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있다고요. ]
새순이 터지면 꽃이 드러나듯, 짙은 봄의 색을 지닌 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무얼 그리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듯 잔뜩 상기된 얼굴로 두 손을 가만히 두지 않고 열심히 포켓몬들의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새순을 닮은 마수가 손을 앞으로 내밀자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 돌아가는건가. 본래의 시간에서 가족을 위해 돌아갔던 동료처럼.
- 그래도 살기는 여기가 편하지 않아? 더 재밌는 일도 많고.
뜨거운 전쟁과, 긴 겨울이 끝나고 세상은 평온을 되찾았다. 누군가는 그 평화가 기꺼울지는 모르지만 소란스럽던 세상이, 길게 드리운 죽음이 멈춘 순간 자신은 오히려 그곳에서 잘려나가는 기분이 들었다면 다들 무어라 생각했을까.
- ... 조카가 거기 있어. 계속 곁에 있어주지 못했거든.
- 그럼 돌아가야지.
레스, 무사히 돌아갔으려나.
많은 이들이 많은 것을 잃은 세상에서 가질 것, 돌아갈 것이 있다는 건 중요하지. 딱히 와닿진 않았으나 고지식할 정도로 언제나 무언가를 마음에 품던 동료에겐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리라.
파란 눈동자가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지난 번 경계를 넘을 때 생과 사의 가운데에서 죽어가던 감각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 마수는 그때처럼 경계를 넘은 이들을 돌려보내는 '은혜'를 베풀려는거겠지. 동료를 가족의 곁으로 돌려보내듯이.
시야에 들어찬 마수의 눈을 보던 칼렌의 입가가 삐딱하게 올라갔다.
"누."
입술의 움직임을 신호로 사나운 기세의 파동이 마수의 옆을 아슬하게 스치고 갔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길쭉한 그림자와 유리알을 닮은 눈동자를 지닌 마수가 나타났다. 아니, 이쪽의 말로는 포켓몬이라 해야하나?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는지 마수의 눈이 커지더니 일그러짐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여기 보내준 건 고맙긴 한데."
이것은 '마수의 질문' 에 대한 '인간의 대답'.
괴리된 시대의 인간이 환상의 마수를 노려보았다.
"역시 내키니까 보내줄게~ 하는 것 같아서 영 속이 뒤틀린단 말이지.
다시는 보지 말자고."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이자, 인텔리레온은 다시 한번 '악의 파동'을 위협하듯 날렸다. 갑작스레 마주한 선명한 적의, 하지만 명백히 끝장을 보지 않으려는 악의를 마주한 환상의 존재는 공기 중으로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골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했다. 그 모든 것이 찰나의 환상이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는 일상의 풍경을 응시하던 이는 등을 돌려 걸어갔다.
마땅히 '돌아갈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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