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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색깔의 글라디올러스가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이 동봉되어 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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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색깔의 글라디올러스가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이 동봉되어 있다)

배추쿵야 2024. 6. 23. 21:28

잔테씨에게.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햇볕에 잘 구워진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슬슬 여름인 모양이에요. 저번에 보내주신 글라디올러스 구근이 꽃을 피웠길래 편지를 보내봅니다. 사진 보내주러 켈티스 타운에 갔더니 캐롤씨만 계시길래 물어봤는데 여행을 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사진쯤이야 로토무 기어나 메신저로 보내면 그만이겠지만 계절마다 몇 번정도는 돌고돌아 전달하는 메시지도 나쁘지 않잖아요? 

 

어디로 갔는지는 얘기 하지 않으셔서 일단 캐롤씨에게 국제우편으로 보내달라 부탁했어요. 하나지방? 칼로스?  이왕이면 플로레에서 가까운 곳이면 좋겠네요. 너무 멀면 반송된 편지를 받아야 할 지도 모르니까. 글라디올러스의 상태는 좀 괜찮아 보일까요? 저번에 보내 주셨던 구근이 워낙 알차고 건강해서 실수 몇 번 쯤이야 잘 이겨낼 것 같지만 이제 심는 족족 말려죽이는 식물킬러 경력은 청산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잔테씨와 세레소씨가 알려준 시간이 있을텐데. 

 

여행은 잘하고 계세요? 사견으로는 날씨가 너무 덥지만 않으면 제일 풍경이 아름다운 계절이 여름이라 생각해요. 눈이 아플정도로 시야가 뚜렷하잖아요. 다른 동네의 여름은 어떤 모습인지 보고 계시려나요. 나중에 돌아오신 뒤에 내키면 여행 얘기라도 좀 해주실래요? 오렌지 한박스랑 같이 놀러갈게요.

 

웨이브타운은 최근에 이 지긋지긋한 모내기 시즌이 끝나고 있어요. 이 동네에서 몇 안되게 한바탕 뒤집어 지는 때기도 하죠. 체육관 사람들까지 다 데리고 나와도 에나비 앞발로 토닥거리는 수준이네요.

 

사실 인류가 서로 아니꼽고 같잖아도 공존과 보호를 택하려는 것은 이게 수를 불리는데 가장 최적의 방식이라 생각해서가 아닐까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모종을 심고 물길을 틀고 중재를 하고....... 21세기가 되고 기계가 나오는데도 왜 정작 인간의 노동은 끝이 나지 않는걸까요... (이하 쓸데없는 한탄이 적혀있다)

 

너무 잡소리가 많았네요. 뭐,  일단...올해 여름 정원도 그럭저럭 완성되고 있어요. 이제 슬슬 꽃이 피고 있으니 좀 있으면 작년보다는 그럴듯한 모습으로 나올거에요. 말하자면 중간 보고 겸 안부인사 같은거죠. 이 편지가 도착할때쯤엔 어디 계실지 모르겠지만,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길 바라요. 

 

 

 

 

- 카페 델라로사에서, 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