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H_oci61TYA?feature=shared
봄날은 간다- 김윤아
사후세계 같은 건 믿지 않지만, 잘 지내고 계십니까? 저는 도망친 뒤로 어찌어찌 헤쳐나가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목표로 했던 것은 대강 이루었고, 피해야 할 것은 대강 피하며 살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어디까지 전지全知할까 알 수 없지만, 죽은 자에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덜 가해질거라 가정하며 대강 지금까지의 일을 얘기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4년만에 전해진 그 유서를 읽고 의도한대로 나머지 반쪽의 유서를 찾았습니다. 알고 있을 진 모르겠지만, 당신이 떠난 뒤 그렇게 사랑하던 화원은 한차례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 상흔이 어느정도 가려지기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적어도 제가 본 플로레지방의 입구는 아름다웠으니까요. 다만 당신의 고향으로 오는 과정에 미처 지워지지 않은, 지워지지 못한 상흔들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당신이 그 상처들을 봤다면 정도는 다르겠지만 비슷하게 생각했겠죠.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어른이 되면서 어떻게 인간적으로 살 지에 대해서 상당 부분은 당신을 흉내낸 것이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지금 봄의 화원과 여름의 폭풍, 가을의 장미를 건너 겨울의 장벽 앞에 섰습니다. 그저 순례여행의 도전쯤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덤비기엔 이 겨울의 장벽은 너무나 험난하나, 어리석게도 그 앞에서 물러서거나 다음을 기약하는 대신 돌파해보려 합니다. 욕심을 내서 돌아오는 것은 실망 뿐이었지만, 최근에 이곳의 리그에서 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느정도 끌릴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카멜리아, 당신이 물려 준 사라시티의 작은 정원은 애석하게도 그대로 공터가 되어 팔릴 예정입니다.
당신이 왜 이곳을 떠나 타지에서 당신의 세계를 꾸렸는지는, 사실 알 수 없습니다. 굳이 묻지도 않을테고요. 추측하기론, 당신이 이 곳에 실망할 일이 있거나, 아니면 고향을 강제로 떠날 일이 있었겠지요. 다만 당신의 작은 정원이 사람 하나를 건졌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저승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왕년에 사람 인생 하나 구했다면서 천국행 티켓에 내 이름을 팔아도 됩니다. ) 꽤나 의미 깊은 곳이라 그곳에 돌아가서 그대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여기엔 가꿔야 할 더 큰 정원이 있어보입니다.
물망초의 동굴이 보여준 것이 단순히 없는 것을 거짓으로 꾸며낸 환상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노을이 질 때마다 붉게 물들던 사막은, 모래처럼 수많은 꽃이 피어 있었고 용을 데리고 있는 소년이 기분좋은 미풍을 쐬며 쉬고 있었지요.
삶이 하나의 궤적이라면, 내가 걸어온 땅은 황야와도 같겠지요.
풍요롭지 못한 거친 잡초 속에서 드문드문 들꽃이 피어 있습니다.
당신이 심은 꽃입니다.
내 발자국은 엉망진창이었고, 때로는 길을 벗어나 이 모든 것이 타버려도 상관없다 생각했으나 결국 당신의 꽃을 길잡이 삼아 마침내 닿았습니다.
"리크 비리디언 입니다."
당신의 정원은 이제 없겠지만,
당신이 바란 것은 나의 정원일테니.
"플로레 리그의 관문, 우바님을 뵙습니다.
.....최선을 다해 부딪치겠습니다."
적어도 황폐해진 당신의 묘 주변에 초라한 '내' 정원쯤은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은 자에게 요행을 바라는 것 따윈 미신이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이 겨울의 관문을 넘을 수 있길 바라주세요.
이 꽃의 고장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이제 챌린지를 해야하니 줄이겠습니다. 우바님의 벽을 들이박으러 가야하니까요.
나중에 여행이 끝나고 묘에 찾아뵙겠습니다.
- 당신의 무례한 '전(X)' 곤충채집 소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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