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거침없이 이룰 수 있는 수단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허구성을 이용하여 재미를 추구하거나, 은밀히 바라던 욕망과 소원을 드러내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대다수의 이야기들은 '소생과 부활'을 금기로 삼고 있었다. 아무래도 모든 것이 가능하고 쉽게 이루어지면 기뻐하면서도 이야기의 닫힌 결말에 대해 더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일까.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시작은 '비극'인 것도 이런 이유일지도 몰랐다. 원래 빛나는 이들의 추락과 실패, 한계의 이야기는 보는 이에게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주고 계속 곱씹게 하기 마련이다. 한번 보고 즐거웠다고 닫는 것보다는 그 부조리에 대해서 왜? 라고 질문하며 뱅글뱅글 돌고 곱씹고 작가의 멱살을 잡는 것도 일종의 '관심' 이니, 창작자와 이야기로서는 이쪽이 더 남는 장사일 것이다. 어쨌든, '죽음'은 그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상징하는 장치였고 영영 닫혀버린 미래 앞에서 누군가는 울거나, 아니면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서 새로운 감정을 자아내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름다웠던 과거를 곱씹으며 슬픔을 키우기도 한다.
수정동굴 묘소티스는 '과거'를 재생하는 곳이었다.
그것도 더 없이 아름답고 선명한 모습으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감각에 냅다 데리고 있던 토게데마루를 굴리자 전류가 사납게 흘렀다. 다만 요 동글동글 귀여운 강철쥐가 가시를 세우며 몸을 둥글게 말자, 언제 그랬냐는듯이 금빛 섬광이 허무하게 흩어져버렸다. 그제서야 천천히 전류가 흐른 방향을 보니, 우스꽝스러운 레어코일을 닮은 녀석이 빙글빙글 돌면서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까막이, 네가 유인해."
-!!!!
불길한 울음소리와 함께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날아오르자, 저 괴상한 레어코일 같은 녀석이 뚫어져라 저쪽을 보는게 느껴졌다. 역시 날개 달린 것들은 전기 기술의 훌륭한 밥이겠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레어코일..아니다, 모래털가죽의 자석 부분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전기코일에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것 마냥 전류가 까막이를 향하여 날아가다.... 눈 앞에서 데굴데굴 굴러온 토게데마루에게 막혀버렸다. 나름 '패러독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힘겨루기엔 꽤 자신 있었는지, 모래털가죽은 조금 당황스러운듯이 세 개의 눈동자를 부지런히 굴리기 시작했다. 저건 분명 토게데마루를 조질...아니 견제할 한 수가 있는 눈치였다.
토게데마루, 이쪽으로. 넌지시 손짓하자 녀석이 폴짝 뛰어올라 품에 폭 안겼다. 그도 그럴것이 풍선이라도 달지 않는 한 이녀석도 지진에 그대로 거꾸러질테고, 초면에 일로 만난 사이에 격한 무력사태로 의가 상하는 것은 안될 일이었다. 모래털가죽 역시 지지않겠다는 듯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하늘에서 날아온 까막이의 박치기에 제대로 약점을 맞아버린 듯 하다.
땅을 흔들자니 하늘에 있는 녀석이 때리고, 전기를 날리자니 토게데마루가 족족 잡아먹고. 몇번 그런식으로 통수를 맞자 이제 슬슬 짜증이 나는 지, 모래털가죽의 눈매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걱정마,"
살살 긁어서 힘을 빼놨겠다. 이젠 단숨에 쓰러트려서 무사히 잘 먹고 잘 쉬게 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몬스터볼이 날아가면서 악비아르가 토게데마루의 앞을 보호하듯이 가로막고 모래털가죽과 대치했다.
"깜깜이, 지진."
.
.
.
"모래털가죽은 무사히 제압했어요. 꽤 골이 나있어서 좀 달래줘야 겠지만."
"고마워요, 아가와 아가의 포켓몬은 다친 곳이 없나요?"
"토게데마루 덕분에 다치진 않았어요."
나머지는 전포협의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송전탑에 보고하러 간 김에 어느새 고쳐진 딩동을 내밀었다. 이 싸움에서 활약해준 토게데마루에게 수고했다 말하며 익숙하게 쓰다듬는 하비에르를 보고 있으니, 물망초의 조각에 비친 옛 모습이 떠올랐다. 제비꽃 색의 소년과 함께하던 하얗게 샌 머리의 알케미스트. 딩동을 고쳐 준 과거의 하비에르.
"묘소티스가 왜 금지구역인지 알 것 같았어요."
단순한 망령이 아닌, 어느 과거의 기억을 비추는 잔인한 거울과도 같은 곳.
현재를 아무렇지 않게 배제하고 순식간에 과거의 한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이 무섭고도 슬펐다. 아무리 사후를 믿지 않아도, 과거의 '그녀'는 어떻게 지냈을까. 아주 잠깐 궁금했을만큼.
공백포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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