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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블룸_리크

Report 10.

배추쿵야 2024. 5. 6. 00:00

 

https://youtu.be/Xv6pZZDHwOk?feature=shared

 

(후지이 카제 - 花 )

 

 


- 여기까지 기어 온 옆집의 망할 꼬마에게.



네가 지금 이 편지를 봤다는 건 스텔라시티까지 왔다는 의미겠지. 내가 아끼던 정원은 잘 받았냐? 몇 달 손대지 않았다고 잡초가 난리났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알아서 하길 바란다. 사실, 굳이 정원을 돌본답시고 시간과 돈을 쓸 필요는 없다. 무덤까지 내 정원을 싸가는 것도 아니고, 이제 그건 네 것이니까. 텃밭으로 만들면 한끼 양식정도는 나올거고, 그냥 놔두면 작은 집 한 채 정도는 딸려올테고, 팔면 푼돈이야 받겠지. 장담하건데, 그쪽 땅값은 솔직히 미르시티나 백단시티만큼 극단적으로 오를 가능성은 없을게다.

요즘 왜 이렇게 잠이 오는 지. 여기까지 쓰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면 믿을까. 빨리 죽어야지 죽어야지 소리 들을때마다 노인네들이 실없이 하는 농담이라 생각했는데, 하루하루가 예전같지 않다는게 느껴질때마다 절로 그 소리가 떠오르더구나. 

왜 굳이 수많은 혈연이나 관계된 사람들을 놔두고 네게 이런 걸 주는건지 궁금하냐?  어쩌면 무슨 꿍꿍인지 의심을 할 지도 모르겠다. 곧이 곧대로 말해도 네게 와닿을지는 모르겠구나. 

하루하루가 갉아먹히는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부쩍 네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꿈에 처음으로 네가 비비안을 보겠다고 담을 타 넘다가 장미가시에 찔렸을때가 나오더구나. 성가신 애새끼와 놀아주는 건 취미가 아니라 내쫓았지만 그 다음날에도, 다음날에도 왔었지. 그깟 비비용 한마리가 뭐라고 이렇게 집착하는가 어이 없기도 했지만....알 수 밖에 없더구나. 

넌 그 아이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었지. 네가 어느날 데리고 온 헤라크로스를 아끼듯이.  내가 정원을 아끼듯이.

그렇지 않으면 미움에 지쳐서 견딜 수 없었겠지. 네가 무엇을 미워하는 지는 잘 모른다. 소문이 돌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정의하기엔 마음이라는 것이 너무 복잡하고 깊잖니. 

누군가는 이 세계를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할 진 모르겠지만, 마냥 그 색채를 보기엔 너무나 도사리고 있는 함정이 많지. 나는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겨울 앞에서 무릎 꿇고 순응하는 것은 싫었고, 너 역시 닥쳐온 무언가를 새파랗게 미워하면서도 무언가를 붙잡으려 했었지.




리크, 
...여전히 꽃을 좋아하니?

네가 마주했던 수많은 겨울 속에서 나의 정원은 여전히 아름다울까. 

네게 알려준 사랑스러운 것들은, 아름다운 것들은 네게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을까. 네 정원은 조금이나마 꽃이 피었을까. 지나다니며 마주한 작은 조각에 눈을 둘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을까.

그러면서 조금은 네 세상이 선명한 색을 띄게 되었을까. 

세상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어른이 되는 것은, 솔직히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게 칠렐레 팔렐레 다니다가 엎어져서 통곡하는 인간이 될 바엔 차라리 부수고 다닐 줄 아는 악당이 되는 게 낫지. 

하지만 그러기엔 어느날 햇살이 너무나 따스하고, 창문을 열어두면 들어오는 향기가 좋았고, 무료하게 책이나 읽으면서 하나씩 몰래 집어먹는 버터쿠키의 달콤한 냄새가 좋더구나. 때로 비가 올 때마다 들어오는 젖은 냄새와 물을 양껏 마시고 싱싱하게 피어나는 꽃잎의 선명한 색도 좋았다. 철마다 꽃을 다르게 심어 정원이 바뀌는 모습도 좋았지.  정원 한구석에서 잡초를 뽑으며 이야기를 던지던 어떤 아이의 뒷모습도 좋았다.

 

이 편지를 보고 있다면 그 애는 이미 어른이 되었겠구나.

스무살이 훨씬 넘어 버린 그 아이가, 네가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네가 적어도 아름답게 느끼고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았길 바란다.

이 작은 정원이 네게 위로가 될 수 있길.

그 곳에서의 시간이 네게 위안이 되었길 바라며.

 

 

 

 

- 어느 성격 나쁜 할망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