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 그 쪽은 그때의 트레이너쨩이구나?"
"아, 안녕하세요."
등산객은 사우나에서 만난다더니. 상대가 먼저 아는 척 하지 않았으면 아마 모르는 사람인듯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함께 이 고원을 올랐다는 것은 이 쌍둥이 남매에게 꽤 인상깊은 기억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휘발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에 만난건지, 이쪽을 귀신같이 알아보는 눈썰미에 약간 침침..한 기분으로 옆에 앉았다. 어차피 성별이 다른 것도 아니고 원래 질색할 수록 놀리는 재미가 있기 마련이었다.
물론 기이하고 반응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이상자들 앞에서 긴장을 놓을 수 없기에, 딱 베고 자기 좋은 크기의 편백 목침을 하나 옆에 두었다. 사우나실에서도 태연하게 취침할 수 있는 기인들을 위해 안배해놓은 것이지만, 지금 이순간은 든든한 부적과도 같았다. 마치 신비의 부적이나 멘탈허브와도 같은 효과라, 저절로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섣부른 행동을 하면 명상을 쓴 가디안이나 님피아처럼 문포스(물리)를 날리겠다는 마음을 먹으니 한결 차분하게 상대를 대할 수 있었다.
"나나 우유 하나 드실래요?"
"어머낭♥ 오레사마 에게 주는 거야? 아따시, 감동했다능♥"
"네..."
말투나 어제의 일은 둘째치고, 이런데서 단 둘이 아무 얘기없이 버티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이건 말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주둥이의 소유자.. 같은 타입이 아니라..약간 높으신 분과 회식할때 언제 망언이 튀어나올까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의무감에 가까운 압박이었다.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궤적고원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고요."
"우훙♥ 안 그래도 처음 봤을때 다들 푹 젖어서 메챠쿠챠 되었었징♥
우후, 오죠상, 오레타치를 걱정했냐능? 나랑 동생은 익숙해서 괜찮다능... 동생에게도 말해주겠다능...★"
"아, 그러고보니 등산객이면 산은 여러군데 가셨겠네요."
"아무래도 그 곳에 산이 있으니까, 오를 수 밖에 없다능. 게다가 산을 오르면 훌륭한 트레이너들이 땀범벅이 되어 헐떡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능♥"
"체력이 엄청 좋으신가 보네요. 그러고보니 등산을 하다보면 캠핑도 하지 않아요? 등산객이라면 역시 겨울철 캠핑이 로망이죠."
저기서 질색하면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화제를 돌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일단 최대한 머릿속의 어린 물음표 살인마의 본능을 꺼내며 슬쩍,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이쯤되면 이 인간들이 희롱을 숨쉬듯이 하는 정체불명의 변태인지 아니면 그래도 희롱하겠다는 일념하에 방방곡곡 온갖 산을 오르는 불타는 변태인지가 궁금했다. 후자라면 그나마 그 광기에 가까운 집념만큼은 인정하는 바였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자면 후자를 인정할 이유가 없이 그냥 둘다 차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워낙 이상한 인간들 사이에서 한 10년 넘게 치이다가 인간에 대한 기대가 바닥을 기게 되면 별게 다 궁금해지기 마련이었다. 이 사람들, 트레이너들과 등산객들에게 집적거리기 위해 어디까지 산에서 굴렀을까? 라이딩 포켓몬 없이는 오르지 못하는 열주동굴에도 가봤을까..?
.
.
.
P.S.
"있지있지, 오죠상.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어?"
"에~ 딱히요. 하지만 꽃같이 예쁜 남자가 좋을 것 같아요."
"우효오옷♥ 무뚝뚝하게 생겨서 의외로 얼굴을 밝히는구나?♥ 하지만 남자는 얼굴이 전부는 아니라능♥"
"아 물론 근육은 예선이죠. 등산객씨는 근육부터 보는 편?"
공백포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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