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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블룸_리크

무언가의 초고에서 이어지는 글 8

by 배추쿵야 2024. 12. 9.

뻘하게 얘기하지만, 전 자는 걸 썩 좋아하진 않아요. 눈을 뜨면 아침이 아니라 또다른 시간이 흐르거든요.

 

그러고보니 알고 계세요? 정신을 잃은 사람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상당히 무겁대요. 단순히 의식이 끊어졌는데도 버겁다고 하는데, 아예 명줄이 끊어진 몸은 얼마나 무거울까요? 아~ 사실, 항상 든든하고 의지가 된다 생각하던 품이건만 그 시간 속에서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품이에요. 아무리 들고 부축해보려 해도 돌덩이마냥 꼼짝도 않은 채 서서히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버리죠.

 

옛 경전에서 말하길 인간의 혼은 하늘로 가고, 백은 땅으로 가 위대한 순환의 일부가 된다던데, 결국 죽으면 시체가 남아 썩어 버린다는 내용을 아주 고상하게 표현한 말이에요. 별거 없죠?  멍하게 식어가고 단단해지는 몸을 붙잡고 있노라면 시체가 돌덩이가 되다못해 거대한 추처럼 저를 끌어 당기기 시작해요. 바다에서 배를 붙잡아  두는 닻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포켓몬 중에도 거기에 기생하는 녀석이 있다고 하죠? 타타륜이던가- 

 

아, 걱정하시나요? 걱정마세요. 이건 악몽이니까. 악몽은 끝나기 마련이죠. 수백번, 수천번을 꾸다보면.. 잠을 잘 때마다 이런 일을 겪으면 이제 두렵진 않답니다. 이미 끝을 알고 있거든요. 물론~ 처음 수십번정도는 못 견뎌서 빠져나오려고 나름 노력해봤어요. 의식을 잃을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든지, 아예 죽은 듯이 푹 자게 하는 약을 한다든지, 짓궃은 것들의 장난일까 싶어 제령 의식을 치른다든지, 아니면 아예 강하게 헛것을 보게 하는 약을 한다든지~ 아, 마지막은 비밀로 해주실래요? 썩 효과가 좋지 않아 딱 두번만 썼다고요. 기분이 나빠서 금방 끊어버렸어요.

 

쨌든...제가 그렇게까지 시도했는데도 끝내 빠져나가는 건 실패했네요. 빠져나가는 방법은 별 거 없어요.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계속 차오르는 검은 물 같은 것이 안고 있는 몸을 덮고, 나를 덮고, 질식하기 직전에 눈을 뜨게 되더라고요. 어때요, 간단하죠? 시간만 떼우면 되는 문제였답니다. 마냥 기다리는 건 지루하니,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이나 혼자 질문을 던지면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때마다 제일 궁금한 걸 제일 똑똑한 사람에게 물어봐요.

 

 

 

.....아, 형님.

 

 

어째서 저는 눈 감아도 잠들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똑같은 지옥에서 다시 눈 뜨는걸까요. 형님이 말씀하신대로 '행복하게 잘 살아가야' 하는데, 왜 제 지옥에 계속 나오시는 거에요? 끊임없이 닿지 않을 물음을 던지다보면 그것이 차오르더군요. 그게 뭐냐고요? 저도 처음엔 어딘가의 물고문이나 물을 이용한 사형 장치 같은거라 생각했는데, 턱 끝까지 차올라 숨막혀도 물에 처박힐 때의 감각과는 또 다르더군요. 마치 공기를 들이마시나 그 무게에 질식하는 것처럼. 

 

시간은 많았으니 생각했죠. 형태없는 개념을 갖고 노는 것은 제 특기니 아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눈 앞을 가릴만큼 새까맣지만 어둠은 아닌 것, 물과 같이 숨통을 틀어막지만 폐를 채우지 않는 것, 물 밖에 난 물고기처럼 질식하게 만들지만 허상처럼 사라지는 것. 

 

그걸 '절망' 이라고 하더군요.

 

 

 

 

....형님.

 

'잘 살아라'고 말하셨지만 저는 매일 밤 절망에 잠겨 죽어가고 있네요.  그것이 코 끝으로 들이닥치는 순간 이제 끝이라 생각하면 다시 새 아침이 맞이하고 있지 뭡니까. 사실 아예 이 낮과 밤을 영영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만에 하나 영원히 악몽이 계속 된다면 어쩌지요? 형님이 말한 '잘 사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영영 고통 받는 것이 두려워 차마 택하지 못했습니다. 그 '잘 사는 것' 이 무엇이길래 마지막 미련으로 남기신겁니까, 그것이 무엇이길래 나는 매일 괴로우나 모두는 웃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까? 

 

'우리'가 썩어 가는 동안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세상이 흐를 수 있는걸까요? 

 

 

 

 

 

 

 

 

 

 

 

 

 

"!!!"

 

물에서 건져내듯이 막힌 호흡이 터졌다. 서서히 또렷해지는 시야를 차분히 응시하자 익숙한 방의 천장이 보였다. 천장과 벽에 어지러이 기어가고 있는 힘의 흐름을 보아하니 그 실험정신이 투철한 땡중이 벌여 놓은 난장판을 뜯어내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용케도 '그것'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생각하다가도, 이미 자신의 지옥이 너무 강해서 그런가. 싶어 실소했다. 다만 악몽의 힘이 꽤 강했는지 온몸에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잔뜩 날이 서 있는 것이, 이런 컨디션으론 이 지랄맞은 실험대를 안전하게 뜯을 자신이 없었다.

 

방문을 밀어 열자 문지방과 틀을 액자 삼아 정원의 모습이 한 폭 갇혀있었다.  흡사 작은 꽃다발 같은 정원은 그리 넓거나 규모가 크진 않았으나, 세심하게 구역을 나누어 화려힌 꽃송이들을 여기저기 심으니, 적당히 눈을 속일만큼은 예뻐보였다. 어디까지나 투숙객의 눈을 즐겁게 하도록 조성 된 것인만큼 가라앉은 기분을 환기시키기로 했다. 대책없다 할 정도로 화려하고 탐스러운 꽃송이는 그 자체로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주니까. 

 

"카멜리아씨 아니에요? 와아- 반갑네요. 여기서 뭐해요?"

"......"

 

천천히 대청마루에서 내려와 관목 사이를 거닐고 있으니 한구석에 누군가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저번과는 다르게 스타일링에 변화라도 주고 싶은 지, 오늘은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올려 묶었다. 익숙한 갈색머리와 작은 등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상대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묶어 놓은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정원을 보고 있었어요."

"정원이요? 그러고보니 저번에도 숙소 근처에 쪼그려 앉아 계셨죠. 꽃을 좋아하시나봐요?"

"꽃보다는 정원에 관심이 있어요. 제가 있는 곳은 이런 꽃이 없으니까."

"흐음- 수국이라든지, 모란같은 꽃 말이죠?"

"네."

"그럼 카멜리아씨는 무슨 꽃을 키우고 계실까요?"

"그라시데아 꽃이랑....나머지는 계절마다 달라요. 올 여름은 글라디올러스를 키웠죠."

"글라디올러스 라면... 그 검처럼 생긴 꽃이죠? 카멜리아씨와 잘 어울려요. 수수해 보이는데..."

 

카멜리아의 인상은 처음에 보였던 그 살의를 제하면 무난, 평범이라 할 수 있었다. 나무등걸 같은 갈색머리에 격식보다는 실용성에 맞춰진 가벼운 옷차림. 잔물결도 일어나지 않는 잔잔한 표정.

 

그리고 그 사이에 박혀있는 선명한 녹색의 눈. 일순간 살의를 보일 때마다 번쩍이며 상대를 겨누던 그 눈. 

형형하게 분노하던 그 귀화는 온데간데 없고 물에 젖은 심록만이 떠올라 있다는 것에 아쉬워 하며 저도 모르게 그 깊은 숲을 들여다 보듯이 가까이 갔다. 불길한 붉은 점이 침잠한 녹색과 마주했다. 

 

 

"눈 색이 굉장히 짙으시거든요."

"칭찬 고맙네요. 근데 조금 떨어져주시겠어요?"

"아차, 너무 들이댔네요. 미안해요."

 

전혀 고맙지 않다는 얼굴로 가볍게 시선을 피하자, 그제서야 제법 좁아진 거리가 인식되어 슬쩍 물러난 뒤 가볍게 양 손을 들어보이며 눈을 감았다.

 

...눈꺼풀 너머에 붙은 검푸른 잔상을 지우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