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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테일_틸

흔적(은 화살 > 시올)

by 배추쿵야 2025. 11. 25.

 

 

"신관님, 이거."


말간 유리같은 눈이 이쪽을 향하자 가지고 있던 단검을 건넸다. 한줌 바람으로 화한 이가 있던 자리에서 유일하게 남아 그가 이곳에 있었다는 듯 피를 머금은 물건이기도 했다.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그 가족의 숨통을 끊은 검을 준다는 게 어떤 바람을 불러올 지는 몰랐다. 누군가는 이걸 모욕으로 해석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이게 극단적인 선택을 부를지도 모른다 생각하겠지. 상실을 겪은 사람은 한번 크게 부숴진지라 겨우 일어났을때 어떤 방식으로 짜맞춰질지 알 수 없으니 이성적으로라면 타당한 이유였다.

 

시올은 제 형제가 저를 감싸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눈 앞에서 보았고, 영영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보았다. 그 마음이 어떤식으로 금이 가고 상흔이 어떻게 남을지는 오로지 그 자신만이 알고 있을테다.  

"기사님이 가지고 있던 검이에요.
그러니까, 신관님께 돌려줄게요. 

 

그것이 시올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붙이게 될 지는 알 수 없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어떤 바람으로 화할지는 어린 바람인 자신도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바람을 걷는 자들은 모두가 변화무쌍한 바람, 검을 건네는 자도 받는 자도 나름의 선택을 할 것이고 그건 그 자의 자유였다. 

 

다만 첫 보호자가, 아빠가, 한때는 세상의 전부였던 이가 눈 앞에서 스러진 것을 보고 살아남았던 어린 바람은 긴 회복의 시간을 거쳐 그가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을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고 싶었다는 마음을 지금에서야 자각했을 뿐이었다. 

 

마치 겨울바람이 대수롭지 않게 남겨준 기묘하고 임시방편의 호칭을 굳이 이름이라 고집했듯이.

이 겨울의 대지에 불어오는 눈 섞인 찬바람에서 희미한 모습을 그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