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혹은 모험가로 일한다면 자고로 흥정을 하고 자신의 노동에 대하여 정당한 댓가를 받을 수 있어야 진정으로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니타 경이 단델리온 길드에 의뢰하면서 제시한 보수는 사비로 제안하기엔 조금 파격적이나, 동시에 빈틈없이 잘해내겠다 약속을 받아내고도 남을만큼 묵직했다. 물론 이곳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아이센의 획기적인 발명품을 건네고 그에 따른 보답으로 세켈레시의 인정을 받은 것이 있지만 귀빈 대접을 받는다고 마냥 늘어져 탱자탱자 있기엔 넘어가기 힘든 문제가 이곳 계곡에 산재해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진 모르겠지만 기사단장 다리오는 꽤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고, 덕분에 한층 좁아진 시야가 되어 무언가를 파악할 상태가 아닌 듯 보였다. 아니, 실상 높으신 분들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그 또한 나름대로 뭔가 생각하는게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폐쇄적이고 날이 서 있어, 속내를 헤아리거나 의견을 나눌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놓고 협조를 거부하는 기사단장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것과, 기사들 사이에서 흉흉한 소문이 나다못해 거의 틀어박혀버린 상사와 두쪽이 난 기사단, 그리고 이 모든게 외인들에게 새어나갔다는 최악의 상황이 겹겹이 쌓여갔지만 의뢰를 맡기는 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각을 알 수 없는 묵묵한 낯이었다. 그랬기에 더 묻지도 말하지도 않고 말없이 함께 길을 나섰다.
"보니타 경."
"네."
"손 잡아도 돼요?"
혈룡의 습격이 있은 뒤 사건을 수습하고 길드원들을 인솔하던 페이베리라든지, 이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하려고 어렵사리 사비를 털었던 보니타라든지. 둘은 직업도, 성향도, 삶도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위태로운 상황을 묵묵히 건너는 것은 같아 보였다.
어줍잖은 위로나 격려는 아니었다. 그걸 하기엔 그녀들은 강했고, 이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하든 아니면 최소한 휘말리지는 않을 능력이 있었다. 다만 그냥, 어린 것의 변덕을 가장하여 묵묵히 걸어나가는 묵직한 발걸음에 작게나마 힘을 보태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이쪽을 보는 보니타에게 모르는 척 웃으며 내민 손을 흔들어보이자 갑주로 감싸인 손이 손을 맞잡아 왔다. 꽉 쥔다기보다는 약간 다른 이를 에스코트하듯 가만히 대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지만.
"쨘~ 이게 그 네레이드 현자님이 만든 '물병'이에요!"
"오, 이게 바로 그..."
"정말 마시면 몸이 나아지나요? 저는 괜찮지만 우리애가...!"
"근데..그 지독한게 이거 하나면 낫는다고? 확실해?"
"...세켈레시님이 오셔도 어떻게 하지 못했는데..."
아이센이 만든 오염중화제는 이 역병을 헤쳐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되었지만 '그렇다' 말을 듣는 것과 직접 그것을 보고 마시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그나마 동족이 만들었고, 신관과 아틀란티스 왕의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신뢰를 붙잡아 두고 있지만 실물을 보는 환자들의 눈에는 미미하게 갖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의구심, 피로함, 체념, 두려움....아무래도 아픈 사람 입장에선 별의별 짓을 해도, 심지어 나랏님이 오셔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약 하나로 해결해준다는 건 믿기 힘든 것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술식도 읊어드릴게요~ 세계수 꽃의 힘을 빌린 마법이에요."
여름 나라의 세계수의 명성은 아틀란티스와 가까운 이라면 알 수 밖에 없을터, 그 세계수의 힘을 빌린 술식이란 얘기에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 든 환자가 조심스럽게 약을 마시자, '위안의 꽃꿀'의 한 자락을 읊기 시작했다. 실제 효과가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원래 이런건 기분 문제였다.
- .....그 꿀은 금빛도 아니고 호박색도 아닌,
어떤 언어로도 묘사할 수 없는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공백포 1804 (위안의 꽃꿀 부분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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