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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테일_틸

[5주차]

by 배추쿵야 2025. 11. 17.

https://wintertree90.tistory.com/493 에서 이어집니다

사망 묘사 있습니다.

 

 

 

옛날 옛적 바닷속에 어떤 요정이 살고 있었다.

그 요정은 성인이 되던 해, 처음으로 바다를 벗어나 물 위의 세상을 보았다.

요정이 태어나서 처음 본 뭍은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워서, 요정은 그대로 바다를 등지고 뭍으로 향했다.

다만 요정은 본래 바닷속에 사는 존재, 낯선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도 잠시, 뭍은 요정을 환영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물은 있었으나 바다만큼 넓고 깊지 못했고, 사람도 요정도 있었으나 물의 요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주지 못했다.

하지만 요정은 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미 뭍의 환상을 사랑하게 되어 바다를 등졌으므로.

 

....그렇게 어리석은 요정은 뭍을 영영 떠돌다 끝내 물거품이 되어서야 바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

 

겨울 바람을 죽인 몬스터에게 잡아먹힐 뻔한 어린 바람은 우연히 지나가던 나그네에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답니다. 잘됐네요, 잘됐어요.

 

아마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어딘가의 책이었다면 이것은 자신이 마주했던 큰 역경, 조금은 어두운 기억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아주 강하고 무서운 몬스터가 제 보호자를 죽이고, 저마저 잡아먹으러 달려들던 것을 보고 도망쳤으나 바람은 어렸고 몬스터는 생각보다 강하고 집요했다. 그리고 사냥이라는 것은 본래 함정에 걸리거나 먼저 지치는 것이 지기 마련이었다.

 

 

이걸 기적이라고 해야하는걸까? 

 

피웅덩이 속에 쓰러진 네레이드의 연보랏빛 머리카락이 힘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 인어는 어찌 된 것인지 막 잡아먹히려던 어린 것을 구하는 대신 몬스터와 거의 동귀어진에 가까운 결말을 맞이했다. 맥없이 줄줄 새어나오는 피와 함께 창백한 비늘이 돋은 하얀 발이 서서히 물거품이 되어 무너지고 있었다. 어린 바람은 물거품의 요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이것이 좋은 징조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요정도 '돌아갈 것'이다. 한줌 바람이 되어 돌아간 자신의 아빠처럼. 

 

잡아먹힐 뻔한 두려움 대신 이제는 한층 무거워진 감각이 자신의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까 몬스터에게 도망가면서는 온 몸이 도망쳐라 경고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와 정반대로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간 피냄새를 맡은 다른 몬스터가 올 수 있으니 어린 바람이 해야 할 일은 온몸으로 구르든 아니면 적당한 곳에 숨든 몸을 피하고 재정비를 해야 하는게 옳았다. '아빠'가 겨울이 닥쳐오면 해야 할 일이라 계속 가르쳤던 것처럼.

 

머리는 도망쳐라 외치고 있으나, 잘게 떨리는 두 손은 축 늘어진 차가운 팔을 굳게 붙잡고 힘껏 당기기 시작했다. 다급한 마음에 손이 미끄러지면서도 당기길 몇 번, 요정의 무너지는 몸은 조금씩 땅바닥에 끌리며 움직이고 있었으나 그것이 어린 바람의 간절함에 무언가가 응답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몸이 1/3 이상 무너진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도망칠거라면 자신의 은인과 함께 도망쳐야 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뜻대로 되지 않아 바들거리면서 억지로 끌고 가고 있으려니, 어느새 무너진 몸은 다른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손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하고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으니 쿨럭이며 숨을 뱉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입을 열었다.

 

 

- 쿨럭...켈록...

하... 이 몬스터 **...내가 이겼다....

 

 

 

 

그날 어린 바람은 '어떤 재생성'을 목도했다.

 

 

 

 

공백포 1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