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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테일_틸

제파르포인트-레바논 (w. 소후)

by 배추쿵야 2025. 11. 14.

제파르 포인트. 비행정이나 윈드워커, 드래곤 등 여하튼 하늘을 노니는 것들이 모일 수 있는 거대한 크레이터인 이곳은 텅 빈 궁창을 길로 쓰는 이들이 있는 만큼 포인트가 설치된 영역의 물자 이동과 교통의 중심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 비상을 방해할 그 어떤 것도 없어야 했으니 보통 평야나 고원에 자리했고, 그 주변은 아무것도 없이 넓게 펼쳐진 대지만이 있을 뿐이었다. 물론 똑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라도 그 주변에 무엇이 있느냐, 아니면 그 하늘은 어떤 성질을 띄느냐에 따라 날아가는 이들에겐 선명히 다른 길이 보였다. 그건 마치 잘 정돈된 벽돌길, 움직이기 둔해지는 모랫길, 사정없이 몸을 흔들게 하는 울퉁불퉁한 산길, 좁은 길, 넓은 길이 갈리는 것과도 같았다.

 

크레이터 위에 선명한 능소화 꽃잎색의 날개를 지닌 행글라이더가 섰다. 밤의 기운을 받아 더 날카롭고 서늘해진 겨울의 바람이 위협하듯 두사람을 할퀴고 지나갔으나, 행글라이더의 주인과 긴 귀를 지닌 윈드워커는 그 바람에 움츠러 드는 대신 어둠 너머 펼쳐진 길을 가늠하고 있었다. 그도 그렇듯이, 하나는 악천후의 산책을 즐기는 이였고 또 하나는 비바람 속에서 태어난 바람이었으니까. 그러니 윈터윈덤의 평야에서 심술궃게 불어오는 한파는 익숙지 않은 길이었다. 

 

"으음- 바람이 생각보다 엄청 가볍네! 내일은 눈은 안오겠다."

"그러게요~ 근데 좀 기세가 사나워. 밤이라서 그런걸까요?"

"아무래도, 바람은 태양신님이 있는 시간보단 여신님의 시간이 더 친숙하거든~"

 

소후의 품 속에 있던 번개돌이- 작아졌다- 가 가볍게 냄새를 맡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아무래도 겨울이라는 것이 살아있는 것에겐 그리 편한 것이 아니니 바람이 어디로 갈 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가늠해보는 듯 했다. 

 

"오리 님~ 지금 출발할까요? 어, 아닌가."

"아직~!"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는 이들은 바람길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으나 동시에 한없이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이 길을 걷기 위해선 첫 발을 잘 디뎌야 하는 걸 알고 있었다. 차라리 타고난 것이 바람이라면 그 변덕스러움도 또다른 흐름으로 보고 있으나 소후는 천둥번개의 날개와 바람길을 잘 타야 하는 쪽이라 오히려 이 시작의 때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방을 찌르고 베듯이 지나가던 찬바람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들자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발길을 내딛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네걸음다섯여섯일곱여덟.... 걸음이 아니라 질주를 시작한 인영 하나와 능소화 꽃잎 하나가 허공으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제파르 포인트를 떠도는 바람이 그 둘의 등을 밀기 시작하며 슬슬 발 밑으로 바람길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순풍, 아주 적절한 순풍. 아마 적절한 대책이 없었다면 몸의 말단이 빨개지다 못해 거멓게 얼기 시작할 시간이었지만 두꺼운 옷이며 술식까지 야무지게 발라놓은 단단한 온기 너머로 비집고 들어오는 한기는 오히려 시원하기까지 했다.

 

 

"소후! 눈 밭이야!"

휩쓸리듯, 흔들리듯 하면서도 거침없이 허공을 걷던 쇠오리가 외치자 소후는 손잡이를 꼭 잡은 채 제 한쪽 손에 쥐여진 작은 우레에게 세상을 보여줬다. 새까만 어둠 아래 세상이 온통 새하얀 도화지마냥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