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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테일_틸

[각성]

by 배추쿵야 2025. 11. 17.

 

두 손 안에 가득차던 따끈한 체온,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 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한껏 늘어져 자다가 꿈틀거리던 움직임, 서서히 열리던 겨자씨 같은 눈이 마주쳤던 순간. 처음 떠오른 이름. 손가락을 붙잡던 작은 손. 이 씨앗이 한동안 온전히 제게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인지하자, 쇠오리는 제일 먼저 제 손을 잡아주던 겨울바람을 떠올렸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 첫번째 보호자는 빈말로도 온정이 있다고 할 순 없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아마 커다란 짐승이나 마수가 작은 것을 물고 돌아다니는 꼴에 가까웠을테다. 그가 알려준 세계는 삭막하고 거친 자연이었고, 그가 알려준 삶의 방식은 그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짐승의 것이었다. 깃털색과 머리색이 닮았다는 이유 하나로 대강 붙인 새의 이름은 여름 바람의 이름이 되었고, 그가 남긴 유품이자 마음에 어떤 자국을 남기게 되었다.

 

 

드래곤의 씨앗은 매일 쇠오리와 함께 하늘을 날았다. 사소하게는 제 작은 날개를 부지런히 움직여 이동하는 것부터, 산책 나가는자신의 어깨에, 머리에, 품 속에서 넓게 펼쳐진 공허를 보았으며 그 속에서 이어지는 한줄기 바람의 길을 따라 공허를 돌파했다. 서늘한 가을바람과 시린 겨울 바람, 온화한 계곡의 바람을 거닐며 끊임없이 땅을 박차고 오르며 발 아래에 넓게 펼쳐진 세계를 보았다.

 

- 울새야.

 

먼 훗날 용이 될 것에게 붙이기엔 지나치게 사랑스럽고 작은 새의 이름이었으나, 작은 드래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설령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새의 이름을 지니고 있어도 그 이름에 담긴 무게는 같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무게는 자신을 감싸던 두 손의 온기, 마주하던 눈빛,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세상을 다 가진듯 기쁘게 웃는 미소로 이루어진, 

 

아주아주 무거운 것이자 하늘을 날 만큼 가벼운 것이라고.

 

 

 

 

공백포 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