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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테일_틸

[6] Teal

by 배추쿵야 2025. 11. 24.

상실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 당시의 쇠오리는 커다란 공허라고 말할 것이다. 몸에 구멍이 뚫린듯 텅비어버렸으나 줄줄 새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가 목구멍이든 뱃속이든 꽉 채워버려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감각이었다. 누군가는 이를 슬픔이나 절망이라 이름 붙이겠으나, 그걸 알기에는 아직 어린 윈드워커는 인간으로서 사유하는 것에 매우 서툴렀다. 장생하는 어느 짐승의 근원식으로 묘사하자면, 이제 겨우 세상을 인식하게 된 새끼라 할 수 있었다.

 

- 얘, 새끼 윈드워커야.

 

공허를 어찌하지 못하여 죽은 듯이 자고 깨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으려니, 무언가가 귀찮도록 자신을 흔들어 깨웠다. 가느다랗게 숨을 쉬며 천천히 눈을 들자 제비꽃 무늬가 어지러이 그려진 하얀 가면을 쓰고, 연보랏빛 베일을 눌러쓴 이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 보자보자 하니까 안돼겠다. 너 그러다가 말라죽는다? 나도 몸 좀 맛 갔겠다, 갈 때까지 가자 싶어서 술 좀 붓고 다녔는데 이것도 슬슬 질리네.

야, 그래도 난 술 사러 가기라도 했지 넌 어떻게 꼼짝도 안할 수 있니? 이러다 난 급성 알콜중독으로 죽을 것 같고, 넌 비쩍 말라서 어느 종자들도 못 써먹게 될거야. 이정도 절여져도 안 죽을 거 같으니까, 식사하러 가자.

 

얼마나 술을 부어댔는지 말할 때마다 꿀렁거리는 움직임과 함께 포도주 향기가 훅 끼치며 어깨가, 팔이, 머리의 일부가 무너지며 진동하자 - 내가 술집 주인한테 남은 걸 받아왔는데...에이 ** ! 이놈의 몸 더럽게 움직이기 힘드네- 그 사람은 중간중간 제 뜻대로 안되는 몸에 대해서 욕을 뱉었다. 그리고 보복이라도 하듯 욕을 하자 몸이 와르르 흘렀고, 긴 침묵끝에 한숨 소리가 들렸다.

 

 

- 에리얼이야. 대충 그렇게 불러. 넌 이름이 뭐니?

- .....오리.

- 새끼 엘프야, 니네 보호자 진짜 이름 대충 짓는다.

 

긴 시간동안 말라가다 처음으로 입에 넣은 것은 자극적인 냄새와 맛의 생선 스튜였다. 탈이 나겠구나 직감하면서도, 일단 무언가가 뱃속으로 들어가니 몸이 잊고 있던 감각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 한 입 먹을때마다 눈 앞의 상대가 재료가 구리니 이딴 걸 준 사장이 치사하다니 한소리씩 하는 것에 맞춰 기계적으로 먹고 있다보니 어느새 그릇이 바닥을 보였다. 

 

 

- 어디가서 그런 이름 붙으면 이상하다고 놀려. 

- 상관없어. 아빠가 지은거야.

- 상관없다는 것도 한두번이지, 너 이 소리 100번 들으면 슬슬 지긋지긋할 걸. 

게다가 너네 보호자가 대충 살아도 나나 이런 소릴 하지, 생판 남한테 너네 보호자 이름 대충 짓는다 소리 듣는것도 좀 그렇잖아. 내가 똑같은 단어라도 딱 멋있는 이름으로 붙여주지. 너, 쇠오리의 다른 이름이 뭔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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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겨울 바람이 거대한 나무 사이를 떠돌고 있었다. 우화할 뻔한 재앙을 막은 뒤 무언가에 휩쓸려 버린 민들레의 무리는  간신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나, 상실을 겪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달의 신관은 오도카니 앉아 먼 풍경을 보고 있었다. 함께 멀리멀리 여행하고 싶다던 형제가 자신을 위해 눈 앞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한줄기 바람이 되어 돌아가버린 것은 다행인걸까, 아닌 것일까.

 

그 희생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날 길드원들이 선택했던 것도 한줄기나마 차지 하고 있었으니 위로의 말을 건넬 자격은 없었다. 게다가 부서져 버린 마음을 모으는 것은 꽤 내면에 침잠해 들어가야 하는거라, 말이 닿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저 옆에 앉아 함께 보이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가 옆에 있는 것이 싫다해도 때로는 옆자리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이 새어나가는 마음을 막아주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깨진 마음을 어떻게든 모으면, 그것은 큰 슬픔이 될 지 원망이 될 지 절망이 될 지는 모르는 일이었으나 적어도 이 여신의 바람이 움직이게는 만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