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칼레히_먼로 (44)
배추쿵야 자캐자캐 백업계
모든 것은 시간의 영향을 받지만, 그 속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 포켓몬과 인간, 단명종과 장생종. 산 것과 죽은 것... 시간을 뛰어넘는 것은 일종의 기적이었지만 어떤 것은 그 무지막지한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었다. 다만 반짝이던 순간이 빛이 바래고,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박제되어 멈춰버린 뒤 이따금 나눌 곳도 없이 홀로 꺼내어보며 회상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먼지처럼 그리움이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노화도, 부패도 의미없는 것의 시간은 그렇게 짙은 그리움이 켜켜히 쌓였었다. 그러니 이따금 그 낡은 창고에 잠깐이라도 빛이 비치는 순간이 그리 눈부실 수 없었다. - 아는 녀석이냐? 길을 가다가 영역을 잘못 들어서 야생 포켓몬에게 습격을 받은 일은 있었지만 선물을 받은 것은 또 처음이..
선배에게. 원래는 직급으로 부를까- 했지만, 우리에게 제일 붙으면 안 되는 호칭이 과거의 자리니 좀 더 친숙한 호칭으로 부르겠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꼭 젊은 날로 돌아간 것 같네요. 선배, 독방은 괜찮으십니까? 비록 선배님이 버린 목숨이 수십수백명이지만 그로 인해 수백수천의 목숨을 구했으니, 아마 조직에서도 공을 인정해서 각별하게 모시고 있을 겁니다. 하루 종일 감시당하고, 일정 범위 이상으로 나갈 수 없는 데다 외부와의 접촉도 극도로 제한되겠지만, 적어도 그곳에 있는 수많은 수형자들과 달리 선배의 명예 정도는 지켜주려고 할 테니까 입는 것, 먹는 것, 자는 것도 다르겠지요. 이 편지가 전해지지 않을 것을 아니까 이렇게 쓰는 거지, 아마 편지가 전해진다면 선배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겠습니다...
...낡은 편지가 하나 있다. 라코스.. 먼 미래에 아름다운 곳이라 불리게 될 이곳의 균형을 찾고, 무너진 세계의 일그러진 왕을 몰아내는데 앞장선 이들이 있었다. 수미 마을의 자크 삼채 마을의 엘루이즈 이설 마을의 노엘 그들이 그곳에서 이끌었다. 가스파르 라즈 글로리 라울 이조아르 레미 레아 마르탱 렉스 르뮤 사이프리아 시몬 아프라 해화 푸투라 데이 데이비드 아스트리드 그들이 그곳에서 함께했으며, 기세르 닉시 라네즈 사마엘 샤샤 S.섬머 스위트피 러브리 아멜리아 알베르 윤 하나하 함께한 그들이 이곳에서 기억한다. - E.M. - 왜 이름을 쓰지 않냐고? 그거야 괜히 자랑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우니까. 알았다, 알았어 이 녀석아. 이 정도면 되겠느냐? 아는 사람은 알아보겠지. (레오꼬의 발자국이 하나 찍혀있다)
라코스에서는 커다란 싸움을 앞두고, 동료들끼리의 우애를 다지기 위해서. ....그리고 혹여나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서로에게 선물을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첫번째 말보다는 두번째 말이 와닿은 것은, 아마도 이 시대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불안하고도 서슬퍼런 시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평생을 불안정한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르고.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온 사람들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으로는 선물만한게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상념이 스쳐지나가는 표정으로, 리더들은 딜리버드들을 사람들에게 보내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나눠주려는 습성의 이 포켓몬들은, 사람들에게 평소 얼굴을 마주하던 동료의 이름을 나눠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