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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히_먼로

[진화로그_포푸니] 돌아갈 곳

배추쿵야 2022. 6. 25. 17:22

https://youtu.be/ycnr-LIlAdI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그것은 반질거리고, 딱딱한 손톱이었다. 스치기만해도 깊게 베일 것 같이 날카롭고 뾰족한 끝이 제법 살벌하여 얼핏보면 검날인가 싶었지만 조금 시간을 두고 보면 금속이 아닌 다른 재질로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짐승의 손발톱 같은 것이라든지.  

포푸니는 제 나름대로 열심히 손톱을 갈면서 가지고 있는 무기를 갈고 닦았다 자부했지만, 이 정체모를 손톱을 보는 순간 이따금 절벽을 오르던 포푸니크들이 생각났다. 눈 쌓인 절벽에 긴 손톱을 깊게 박아넣고, 얼어붙은 바위와 얼음을 차근차근 깨면서 한발한발 올라가던 모습이었다. 마치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모습이 부럽고, 따라하고 싶었지만 그날 이름모를 인간들에게 잡혀가면서 깨달았다.

자신은 아직 한참 멀었구나. 라고. 


얼떨결에 노인에게 발견되어 좀 피곤하지만 나쁜 녀석은 아닌 꼬맹이와 함께 살았지만 이따금  이른 아침에 산책을 나올때마다 차게 얼어붙은 공기가, 멀리서 웅웅 불어오는 바람소리에서  눈의 냄새와 무섭게 불어오는 얼어붙은 바람의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근본이 경계심이 많고, 겁이 많지만 포푸니의 고향은 설원과 빙벽이었다. 끊임없이 바위를 오르고, 홀로 바람을 맞으며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는 것. 그것은 어떤 성격이라도, 설령 정이 깊게 들더라도 핏속에 새겨진 본능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돌아갈 곳이 없어서 여행을 떠났단다."

어느 새벽, 노인은 포푸니와 꼬마를 이끌고 산책을 나섰다가 수미마을 인근 개울에 걸터앉아 지나가듯이 말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나직했고, 가루눈마냥 바람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 그 다음에는 돌아갈 곳을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지 않았지.
하지만 돌아갈 곳을 만들 수 있는 나이가 되니 깨달았더구나. 나는 이 끝없는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노인과 동행한 꼬마는 이들이 아주 아득히 먼 곳에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영감이 '태양을 동경한다' 라고 말했다.


"지나친 참견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가 고향을 찾는 여행을 하는 동안, 동행은 해줄 수 있단다.
이곳이 내 세계가 아니니, 매이지 않고 함께 찾아줄 수도 있지."

노인은 오지랖이 넓다. 이유없이 이로운 것을 건네주며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한낱 마수도 이유없는 도움과 선의에는 그에 따른 대가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건만, 그의 제안을 선뜻 거절하긴 어려웠다. 그것은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라 나쁘지 않다는 점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노인의 모습에서 그리운 겨울바람이, 흩날리는 눈이, 새하얗게 펼쳐진 설원이 보였다. 분명 태양을 눈에 담고 있으나, 그가 선 세계는 따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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