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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공주] 서브퀘스트 ▶ 진지작성 (w. 나후아타, 플로라이트) 텅 빈 겨울 하늘에 두마리의 하피가 움직이며 날고 있었다. 타고나길 산 것을, 그 중에서도 인류를 사냥하는 것에 특화된 괴물들은 타겟을 보자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빙빙 돌기 시작했다. 머리가 셋이니 하나씩 나눠갖고 나머지 하나는 반씩 나눠가지면 되리라, 그리 생각하고 있는지 제법 움직임에 의욕이 가득해 보였다. 책에서는 그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고 있는 몬스터라 한줄 설명이 적혀있으나 이 날개 달린 것들이 그 한줄 설명만큼 간단히 상대할 존재면 애초부터 몬스터라 불리지도 않았을터, 상황을 살피듯 느긋하게 빙빙 돌던 하피들의 신형이 순간 사라졌다. 다만 타겟에는 날개를 가진 이가 하나, 하늘을 걷는 것이 하나, 그리고 이런 몬스터에 익숙한 베테랑이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패착이라면 패착. 자신들을 노.. 2025. 11. 4.
[3주차] 겨울이 왔다. - 쇠오리. 아주 오래전, 첫번째 보호자와 함께 창백한 산 근처에 갔다가 눈보라에 휩쓸려 날아간 적이 있었다. 쇠오리는 태생적으로 바람을 타고 날 수 있었으나 폭우가 쏟아지고 뇌우가 번쩍이는 여름의 태풍은 얼어붙고 한없이 건조한 눈보라와 상성이 좋지 않았고, 날카롭고 가벼운 바람이 어린 윈드워커를 베고 숨을 죄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마 보호자가 겨울바람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한줌 바람도 되지 못하고 영영 이 겨울산에 갇혀버렸을지도 몰랐다. 친하다 생각했던 바람의 배신과 뭘 어찌할새도 없이 짓눌리며 서서히 목숨이 조여지는 감각에 충격받아 울고 있으려니, 가지가 맥없이 휘둘리듯 떨리는 몸을 보호자가 단단히 안아주었다. 그 매서운 바람과 한기에서 태어났는데도 보호자의 품 속에선 그것이 희미한 겨울의 냄.. 2025. 11. 2.
(W. 우티스) 이 세계는 신들의 은총으로 빚어진 세계니, 모든 것은 부모의 형태가 달랐으나 자연으로부터 왔으며 죽은 뒤에도 자연을 이루는 한줌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다른 이들은 숨멎은 뒤 그가 존재했다는 흔적이 어떤식으로든 남는 반면, 윈드워커의 결말은 본래 보이지 않는 한줌 바람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니 장례에 대해 크게 생각할 일이 없는게 당연했다. 눈 앞에서 하얀 꽃잎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옷감을 치렁치렁 걸치고 꽃을 닮은 가면으로 제 본모습을 가린 이가 한손 가득히 하얀 꽃을 쥐고 불어오는 바람에 그 연약한 것을 싣고 가게 하고 있었다. - 자, 너도 뿌려.- 두 손 가득히 쥐여지는 꽃잎은 희고 깨끗한 흰색이었으며, 입에 물고 씹으니 꽤 향기가 좋았으나 맛은 없었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약도.. 2025. 11. 2.
[의뢰] 서브퀘스트 ▶ 축복의 존재 제페토의 권유에 따라 찻잔을 쥐자 적당히 기분좋은 온기가 손끝을 타고 번졌다. 서머데일의 기후는 추위와 가장 거리가 멀다만, 예외적으로 뇌우의 주가 오면 사방에서 퍼붓는 빗줄기가 윈터윈덤의 눈보라 못잖게 생명체에게서 체온을 앗아가는 위험한 것이 되기도 했다. 서머데일에 사는 이들은 그 기간에 폭우에 짓눌리고 무거운 습기를 마시며 추위란 무엇인지 배우기도 했다. 상큼한 딸기의 향기를 음미하며 차를 마시자, 생강의 매운맛이 혀를 덥히는가 싶더니 이윽고 끝에 설탕이 들지 않은 슈가플럼의 달콤한 맛이 감돌며 굳어있던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었다. 뇌우의 주마다 몸이 으슬으슬할때 쯤이면 서머데일의 카페에서 온갖 차가 나왔지만 이 남국의 프루츠 티는 몸이 풀어지는 듯한 감각이 바로 느껴지는게 기분 좋아서 두모금, 세.. 2025. 10. 30.
(W. 라샤) 마차 너머로 튼튼하고 굵직한 나뭇가지를 닮은 뿔이 보였다. 그 뿔을 지지대 삼아 감아내고 길게 뻗으며 자란 덩굴의 끝에는 선명하게 붉은 꽃봉오리와 붉은 장미가 맺혀있었다. 그 아래에는 꽃과 선명하게 대비되듯이 하얗게 빛나는 마수가 있겠지만, 아쉽게도 모습을 드러내기엔 이녀석, 통칭 들장미는 겁이 많은 것인지 아직까지 주변을 경계하며 쉽게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물을 던져 계약을 맺을 때는 별다른 저항이 없어 괜찮은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너무 긴장하고 놀라서 굳었다가 엉겁결에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라포소크를 좋아하려나?""토토리도 은근 야생 마수한테 인기가 좋았어. 하운드들이 다 먹어버려서 안보였잖아.""그럼 토토리를 으깬 뒤에 라포소크의 수액을 묻히는 건 어때?.. 2025. 10. 30.
[2주차] Ariel 누가 그랬던가, 어느 사특한 정령이 포도나무에 동물의 피를 차례대로 뿌려 키운 뒤 그 열매로 만든 것이 술이라고. 술을 과하게 마시면 취하게 되고, 술에 절여져 이성을 놓은 인류는 생각이상으로 재밌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다만 그것을 발명한 주체가 사특한 무언가라고 하는 만큼 그 모습이 결코 아름답거나 바람직하진 않은건 당연했다. 솔직히 좋으면 인류가 다 해먹지 뭣하러 이 모든 해악은 사악한 존재의 탓이라고 음모론자마냥 책임을 피하겠는가? 이곳 [물보라 주점] 도 여타의 평범한 주점들마냥 식사와 술을 파는 곳이었고, 평범하게 분위기를 해치는 인간은 내쫓았지만 운때가 맞으면 한편의 공연예술을 펼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보통은 서로 몸을 가누지 못해서 이게 격투인지 땅바닥vs 나를 의미하는 것인지 몰.. 2025.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