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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eal 상실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 당시의 쇠오리는 커다란 공허라고 말할 것이다. 몸에 구멍이 뚫린듯 텅비어버렸으나 줄줄 새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가 목구멍이든 뱃속이든 꽉 채워버려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감각이었다. 누군가는 이를 슬픔이나 절망이라 이름 붙이겠으나, 그걸 알기에는 아직 어린 윈드워커는 인간으로서 사유하는 것에 매우 서툴렀다. 장생하는 어느 짐승의 근원식으로 묘사하자면, 이제 겨우 세상을 인식하게 된 새끼라 할 수 있었다. - 얘, 새끼 윈드워커야. 공허를 어찌하지 못하여 죽은 듯이 자고 깨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으려니, 무언가가 귀찮도록 자신을 흔들어 깨웠다. 가느다랗게 숨을 쉬며 천천히 눈을 들자 제비꽃 무늬가 어지러이 그려진 하얀 가면을 쓰고, 연보랏빛 베일을 눌러쓴 이가 이.. 2025. 11. 24.
[흐름의 아그웨] 서브퀘스트 ▶ 이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해 스프리건의 심장이자 근간이 보석으로 되어있다는 것은 배워서 알고 있었다. 예전에 쉬는 시간에도 우연히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몇몇 길드원들이 자신의 근원이 무엇인지 얘기하는 것은 들었으나, 무엇이든 그걸 직접 눈으로 마주하고 느끼는 것은 또 감상이 다른 법이었다. 사제의 품 속에 안긴 것은 마치 깊은 바닷속을 연상케하는 짙푸른 사파이어였다. 그저 평범한 보석으로 만났다면 생각보다 알이 굵고 색이 예쁜 상등품의 사파이어라 여기겠으나 소리에 민감한 바람은 그것이 태동하는 소리를 들었다. 위에서부터 부서져 내리는 햇빛이 보석을 비추자, 깊은 청색의 보석은 그 빛의 조각들을 잡아 무지개색으로 쪼개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심장이 얕게 뛰는 소리가 들려 흡사 빛이 부서지는 소리와 같이 느껴졌다. 아그웨는 그.. 2025. 11. 19.
[네메시스 나이트 보니타] 서브퀘스트 ▶ 환자 간호 지원 용병, 혹은 모험가로 일한다면 자고로 흥정을 하고 자신의 노동에 대하여 정당한 댓가를 받을 수 있어야 진정으로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니타 경이 단델리온 길드에 의뢰하면서 제시한 보수는 사비로 제안하기엔 조금 파격적이나, 동시에 빈틈없이 잘해내겠다 약속을 받아내고도 남을만큼 묵직했다. 물론 이곳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아이센의 획기적인 발명품을 건네고 그에 따른 보답으로 세켈레시의 인정을 받은 것이 있지만 귀빈 대접을 받는다고 마냥 늘어져 탱자탱자 있기엔 넘어가기 힘든 문제가 이곳 계곡에 산재해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진 모르겠지만 기사단장 다리오는 꽤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고, 덕분에 한층 좁아진 시야가 되어 무언가를 파악할 상태가 아닌 듯 보였다. 아니, 실상 높으신 분들의.. 2025. 11. 17.
[각성] 두 손 안에 가득차던 따끈한 체온,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 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한껏 늘어져 자다가 꿈틀거리던 움직임, 서서히 열리던 겨자씨 같은 눈이 마주쳤던 순간. 처음 떠오른 이름. 손가락을 붙잡던 작은 손. 이 씨앗이 한동안 온전히 제게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인지하자, 쇠오리는 제일 먼저 제 손을 잡아주던 겨울바람을 떠올렸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 첫번째 보호자는 빈말로도 온정이 있다고 할 순 없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아마 커다란 짐승이나 마수가 작은 것을 물고 돌아다니는 꼴에 가까웠을테다. 그가 알려준 세계는 삭막하고 거친 자연이었고, 그가 알려준 삶의 방식은 그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짐승의 것이었다. 깃털색과 머리색이 닮았다는 이유 하나로 대강 붙인 .. 2025. 11. 17.
[어항 속의 파파야] 서브퀘스트 ▶ 어항 속의 홍보작전 글레이셔 강의 최상류에 자리잡은 레인바인 계곡은 뭍과 물의 경계라 할 수 있었다. 본래 태생은 대지에서 약동하는 원석을 제 심장으로 삼고 있으나 일생의 대부분을 물 속에서 보내는 고래 스프리건의 존재와, 계곡의 호수에 잠겨 아래로 가다보면 거대한 수중 도시를 마주할 수 있었다. 뭍의 광장에는 거주민인 고래 스프리건들과 아틀란티스에서 건너오거나 바다가 아닌 다른 곳에 사는 네레이드들, 이곳을 봉쇄하기 위해 온 네레이드 병사들이 섞여있었다. 바다 버린 자들이 유적을 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죄인을 색출하기 위해, 범람한 오염에 시달리고 있어서, 각자의 사정으로 얼굴에 조금 지친 기색이 보였으나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은 현자가 등장했다는 소식에 간신히 시름을 내려놓고 짧게 나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2025. 11. 17.
[5주차] https://wintertree90.tistory.com/493 에서 이어집니다사망 묘사 있습니다. 옛날 옛적 바닷속에 어떤 요정이 살고 있었다.그 요정은 성인이 되던 해, 처음으로 바다를 벗어나 물 위의 세상을 보았다.요정이 태어나서 처음 본 뭍은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워서, 요정은 그대로 바다를 등지고 뭍으로 향했다.다만 요정은 본래 바닷속에 사는 존재, 낯선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도 잠시, 뭍은 요정을 환영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물은 있었으나 바다만큼 넓고 깊지 못했고, 사람도 요정도 있었으나 물의 요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주지 못했다.하지만 요정은 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미 뭍의 환상을 사랑하게 되어 바다를 등졌으므로. ....그렇게 어리석은 요정은 뭍을 영영 떠돌다 끝내 물거품이 되어서야.. 2025.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