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09 [메테오체육관] 고대의 원형극장을 본뜬 필드 위의 하늘에 투명한 배리어가 넘실거리며 한번 겹쳐졌다. 간간이 들리는 자동차와 라이딩 포켓몬들의 소리, 사람들의 목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가게의 음악 등등.. 귓가를 스치던 자잘한 소음들이 순식간에 덮이며 침묵이 무게를 지니고 내려앉는다. 그러고 보니 옛 극장에서 상영되는 '연극'은 단순히 허구의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던가. 기본적으로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극장 위에선 '현실'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 연극의 이름은 투쟁이라고 했던가. 적막의 한가운데에, 니로우 깃털로 감싼 코트를 두른 이가 고요하게 서 있었다. 이 필드의 주인이자 '관문'의 주인이었다. 무감한 낯은 기둥과 벽돌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을 닮아있어 흡사 이 무대를 .. 2025. 4. 16. [진화] 고고마(마그케인 > 블레이범)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살던 것이 어느날 갑자기 흘러넘칠 때가 있었다. 사람에 따라 그 감정이 넘치는 양은 달랐지만 고여있던 기억과 감정이 선을 넘어 흐르는 순간의 감각은 꽤 깊고 괴로운 모양이었다. ... 오델로가 전해준 이야기는 동행인이 어느날 그렇게 흘려버린 기억과 감정이었다. 기본적으로 포켓몬이 굴을 만들어 틀어박히듯 제 동행인은 흔적을 깨끗이 지우면서 종종 낡은 숙소에, 허름한 여관에, 때로는 좁은 배 위의 선실에 혼자 틀어박혀 있었는데. 그때의 동행인은 무언가를 회복하려는 듯 꼼짝 않고 라디오만 틀어놓았다고 한다. 건강이며 회복력 하나만은 포켓몬의 시점에서도 '강하다' 축에 속했지만, 그날만큼은 크게 다친 것마냥 조용하게 숨 죽이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하나의 성장기였고, 어떤 도전의 이야기였으며.. 2025. 4. 16. [진화] 다이아 (이브이 > 님피아) " 애정을 듬뿍 전할 수록 필드에서 우직하고 강인하게 버티는 모습은 노말타입 포켓몬들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캠프 챌린저들이 가장 먼저 거치는 관문은 켈티스 타운의 세레소 관장이었다. 초보 트레이너들에게 상냥하게 배틀을 가르쳐준다는 소문처럼 정말 문외한이었던 그때도, 지금도 새삼스레 관문을 넘을 때 그 손을 잡고 성큼 넘어선 기분이 들곤 했다. 어째서 플로레의 꽃과 숲의 관문인데 풀타입이 아니라 노말타입이었냐는 의문에 그리 말했었다. 애정을 쏟는 것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를 키워보긴 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둔한 보호자는 종종 피보호자를 화나게 했던 기억만 남아있었다. 꽃집 프리마베라를 가득 메운 꽃들이 항상 싱싱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것 처럼,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품 안에 한가득 안긴 꽃들에.. 2025. 4. 15. [진화] 고고마 (브케인 > 마그케인) 트레이너 캠프의 사람들이 받은 알들은 각 팀의 '막내' 같은 포지션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이쪽의 막내는 튼튼한 몸과는 거리가 먼 -건강 자체는 이상없다!- 다소 말랑한 인상에 가까웠고 훈련받은 기간과 별개로 꽤 오랫동안 작고 말랑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처음에 체육관 배틀에 나가고, 여우사냥까지 나가겠다고 제 보호자와 맞서면서 고집을 부리던 모습과는 또다른 선택이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꽤 단순하게 화를 거두는 것과 별개로 한번 단호하게 거부당하면 그 섭섭한 기억을 꽤 오래 가져가는 편이었다. 한동안은 코가 댓발로 들어나서 일곱번은 불러야 슬쩍 눈길을 주기로 마음먹었지만, 그것 또한 제 보호자가 다른 누나 형들과 같이 굴리는 걸로 많이 희석이 되었다. 이제 어느정도 훈련.. 2025. 4. 15. [아르바이트] 소중한 포켓몬의 산책을 부탁해 메테오시티는 플로레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그만큼 기회도 많은 곳이었지만 밤이 되도록 대낮같이 밝은 건물들 사이사이 계곡처럼 파인 그림자도 아득히 깊었다. 산맥 한가운데에 살다 막연히 가장 큰 곳이니 돈벌이도 많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이곳에 발을 디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흠잡히지 않는 선에서 했던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며 공원쪽으로 향하자, 어깨에 앉아있던 태깅구르가 긴장했는지 몸을 굳히는 것이 느껴졌다. 재의 날이 터지고, 그걸 복구하고, 작년 플로레 리그를 부활한다는 선언 이후 많은 것이 한꺼번에 바뀌었다. 그 변화의 선두에 선 이들 중 하나는 트레이너 캠프였었다. 상당수가 이쪽 출신이 아니라 했던가. 어쩌면 플로레지방이 격변한 원인으로는 유입된 이들이 자리를 얻은 것도 있을테다. 태.. 2025. 4. 15. [진화] 오델로(갱도라 > 보스로라) 오델로가 고향에서 웬 못되먹은 인간에게 납치당할 때, 그 당시엔 꽤나 어린 개체여서 기억이 온전하진 않았다. 다만 자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을 보호하려는동족의 속성처럼 근처에 어린 가보리들을 지키던 갱도라와 보스로라들이 많던 것은 기억했다. 그래서 종종 거울이든, 아니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면 기분이 묘해지기도 했다. 먼 기억속에만 있던 가족인지 아님 무리인지 알 수 없는 어른들. 그저 돌아가려는 기억에 박제된 모습이 자신이 되어 있었다. 이대로 더 자라면 그 기억의 가장 핵심에 자리한 이름 모를 보스로라와 닮을 것이다. 가끔 어떤 예감은 '느낌'의 형태로 오는 법이었다. 유난히 몸이 무겁고, 그러면서도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기분에 괜히 주변을 서성이게 되는 그런 밤. 오랫동안 인.. 2025. 4. 14.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85 다음